[이강태의 IT경영 한수]<97>이제 좀 몰려 다니지 말자!

[이강태의 IT경영 한수]<97>이제 좀 몰려 다니지 말자!

또 한 해가 새로 시작했다. 연말연시에 사람들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 그래서 해넘이·해맞이를 보러 산으로 바다로 몰려다닌다. 장소가 어디든, 누구랑 가든 마음만 새로 잡을 수 있으면 되지 굳이 남 가는 데를 찾아다니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힘들게 가서 인파 속에서 사진 찍고 소원 빌면 집에서 마음 잡는 것보다 더 약발이 좋은 것인가. 왜 그리 몰려다닐까.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분명하다. 농사엔 때가 중요하다. 씨 뿌릴 때, 모내기할 때, 논에 물 댈 때, 농약 뿌릴 때, 추수할 때를 잘 맞춰야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집단으로 학습한 전통이 있어서 그런지 이웃이 하면 나도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따라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망친다. 따지고 보면 농사뿐만 아니다. 벚꽃, 매화, 유채 밭, 해수욕장, 단풍, 설경, 축제, 전시회, 영화, 음악회, 맛집, 해외 여행, 페이스북 등 어디든지 누군가가 좋다고 하면 나도 해보고 나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왜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남 따라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남 따라 하면서 내가 얻는 것이 뭔가. 그렇게 하고 나면 행복한가.

이 모두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하기보다는 남을 따라서 하게 된다. 대학은 꼭 가야 하고 공무원이 됐으면 좋겠고,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고, 안정적 직장에서 오래오래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100대 1, 500대 1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명은 행복하고 499명은 불행해 진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차별대우에 민감한 이유도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비교하고 따라 하고 같아지려고 하면 할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서로 같을 수 없는 것을 서로 같아야 한다고 우기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생각을 바꿔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다양하고 재미있어 질 것이다. 서로 다르게 되려고 노력한다면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고, 경쟁이 없으니 스트레스도 없고 스트레스가 없으니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흙수저·헬조선도 없고, 강력범죄도 줄고, 자살률도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왜 대학을 꼭 가야 하고, 고시를 봐야 하고, 삼성전자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가. 정말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노력은 해 봤는가. 같은 곳에서 북적이며 경쟁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세계와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해 봤는가. 나만의 작은 영역을 개척하고 거기에서 성취감을 얻는 것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 입사하는 것보다 정말 덜 행복하고 불행해 지는 건가. 삼성전자에 입사하기만 하면 주변 사람이 바라는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정말 행복할 것인가.

경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한동안 도요타, GE, 노키아, 소니, 닌텐도, 월마트를 벤치마킹했었다. 우리는 누가 뭘 잘한다고 하면 몰려가서 뭘 어떻게 잘하는 지 알아 보려고 애쓴다. 우리의 이런 경쟁적 베끼기 덕분에 얼마나 많은 외국의 유명한 MBA 교수,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 외국의 유명한 IT 솔루션 회사, 제품,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 환대를 받았던가. 이제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테슬라와 이스라엘 창조경제를 배우자고 몰려다니고 있다.

당연히 이들을 연구하고 성공 포인트를 찾아야 하지만 연구 방향은 이들이 했던 방식을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남과 달라지려고 노력했는지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난 뒤 후발 주자인 우리가 이들과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일으킨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씨 같은 분도 사실은 남 따라하기보다는 나만의 생각과 신념과 방식을 성공할 때까지 열정적으로 추진하셨던 분들이다.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해답은 이제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힘들다. 우리 경제 규모나 위치가 누구를 따라 하기에는 너무 커져 버렸다. 이제는 내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내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다를지 노력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이 한다고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이 한 것이면 나는 절대 안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비교 대상이 없어지게 되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열심히 노력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해돋이 한다고 수십만 인파가 해변으로 몰려들고 여름 휴가철이라고 고속도로가 미어지고, 탤런트가 입은 옷과 가방이 매진되고, 다른 회장님이 김장하고 연탄 나른다고 해서 우리 회장님도 김장하고 연탄 날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제발 몰려 다니지 말자.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