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은 천체 관측기구(혼천의)와 해시계(앙부일구), 물시계(자격루)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조선시대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노비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려운 세월을 겪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신분제가 사라진 오늘날, 누구나 자유롭게 과학을 탐구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학자 인기는 날로 감소 추세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장래희망 직업 조사에서 상위권은 교사, 의사, 공무원 등이 차지한다. 과학자를 찾기 어려워진지 오래다. 이공계를 선택한 청소년도 성적이 우수하다면 의대에 진학하거나, 법대나 경영대로 진로를 전향하기 일쑤다. 대학 졸업 후에도 국가 연구소보다는 대기업 취업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도 과학자의 줄어드는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인기가 줄어든다고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국가 발전을 위한 과학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학기술은 대한민국 기초를 닦고 경제발전을 견인해 온 핵심 원동력이다. 지난해 미래부에서는 대한민국 대표과학기술 70선을 선정했다. 70선에 포함된 원자력, 정보통신, 건설,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은 항상 국가발전을 선도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은 국가발전과 전략, 안보의 핵심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에 57개 국가, 12개 국제기구 고위급 관계자와 석학이 참석했다. 과학기술을 활용한 경제성장과 인류 당면과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려는 목적이었다. 기후변화, 대테러협력 등 전 지구적 문제해결에서 과학기술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전제조건이다.
잃어버린 과학 열기와 과학자 자긍심을 찾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무엇보다, 과학자들이 연구 몰입도를 높이도록 연구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노벨과학상 분야에서 유럽, 일본, 중국 등이 걸어온 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만 몰두해 온 연구가 노벨상 수상 토대가 됐다. 우리 역시 단기 성과에 치중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자 연구목표와 성과를 가늠해야 한다. 이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과도한 행정 업무는 줄이고 여성과 장애인 과학자 등에 대한 지원을 늘려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국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도 장기적으로 늘려가야 한다. 지난 7일 열린 ‘제10차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기존 180만명이던 과학기술 분야 인재를 2020년까지 220만명으로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경기가 어려운 불황기에도 국가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호황을 이끌었던 많은 사례들이 있다.
우리는 195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도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국내 최초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TRIGA Mark)-2’를 건설하며 과학 기술 발전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반세기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장영실이 노비 신분에서 고위 관직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조선시대 최고 과학자로 평가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을지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장영실이 가진 능력과 열정을 알아봐준 세종대왕이 없었던들 그는 그저 역사 속에 이름 없이 묻힌 수많은 노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시대 장영실을 알아볼 세종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다시 과학기술이다.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 jkkim1@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