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사람과 야생동물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건이 두 차례나 일어났다. 경북 군위군과 강원 삼척시에서 인근 산에 올라갔던 주민이 멧돼지에 물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어릴 적 할머니 품에 안겨 듣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에서나 들어볼 법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요즘과 같은 최첨단 디지털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적 사고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 들어, 왜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이 자꾸만 사람에게 해를 끼칠까?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멸절시켜야 할 대상인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뉴스에서 도심에 멧돼지가 출현했다거나 농경지에 나타난 멧돼지나 고라니가 농작물을 망가뜨렸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됐다. 운전을 하다가 휙 하고 눈앞을 지나가는 동물에 놀란 적도 있고, 차에 치어 길에 쓰러져있는 동물을 보는 일도 다반사다. 그들은 왜 우리 일상으로 침입해오는 것일까?
쉽게 말해 야생동물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편리를 위해 산을 깎아 개발하고,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전국 산을 찾는 동안 야생동물은 점점 자기만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만약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야생동물사회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라고 하지 않겠는가. 살아갈 공간이 비좁아지고, 얻을 수 있는 먹이도 줄어들고, 서식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야생동물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사는 곳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 접점에서 야생동물과 사람이 서로 피해를 주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야생동물도 생명체로서 서식환경이 보호돼야 마땅하고, 인간에게는 동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물론 사람을 해치는 야생동물까지 무조건 보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그런 위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야생동물이 적정한 서식밀도를 유지해 사람과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매년 실태조사를 거쳐 수렵장 운영 등 개체수 조절 정책을 펴고 있다. 또 도심에 출현해 사람을 위협하는 멧돼지는 즉시 포획할 수 있도록 지자체마다 기동포획단을 운영하도록 하고, 농가에는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전기울타리 같은 피해예방시설의 설치비를 지원하고 있다.
야생동물 보호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정규 등산로 외 샛길에는 들어가지 않고, 도토리 등 야생동물 먹이를 산에서 가져오지 않도록 알리고 있다. 전국 12개 지자체에 야생동물구조센터를 운영해 매년 7000마리 이상 야생동물을 구조해 자연으로 방사하고 있다.
우리가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비단 동물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일으킨 생태계 내의 작은 불균형이라도 인류에게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 20세기 중반 중국에서 나락을 쪼아 먹는 참새를 유해동물로 지정해 거의 멸종시키자, 수확이 늘기는 커녕 해충이 창궐해 대흉년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0년 유엔에서 발간한 제3차 생물다양성 전망보고서는 지구상 척추동물 31%가 1970년 이후 멸종됐다고 밝혔다. 공룡이나 맘모스 처럼 일단 멸종되면 2000만년이 지나도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 복원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식량 대부분은 동식물로부터 얻어지고, 의약품 46% 이상이 동식물로부터 추출한 물질이 주성분을 이룬다. 야생동물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우리 주변에서 하나의 종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가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돌린다면 다음 세대에게도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풍요로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 kumri1@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