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무선(HAM)` 규제 논쟁 다시 수면 위로

아마추어무선(HAM) ⓒ케티이미지뱅크
아마추어무선(HAM) ⓒ케티이미지뱅크

한국 아마추어무선 규제가 지나치다는 국제연맹 권고가 나오면서 정부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간 해묵은 대립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연맹은 순수 취미활동 취지에 맞게 아마추어무선을 옥죄는 규제를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전파간섭과 안보상황을 고려해 조건 없는 허용에 난색을 표했다. 다만 외국인 일시 입국 등 예외 상황에는 규제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KARL·이사장 김형수)은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세계아마추어무선연맹(IARU) 제3지역 제16차 총회에서 ‘한국 아무추어무선 규제 철폐’를 담은 권고안이 회원국 만장일치로 통과했다고 14일 밝혔다.

IARU 제3지역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중국·호주 등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29개국이 참여한다. IARU는 권고안에서 “한국과 필리핀은 아마추어무선 장비 소유와 운용에 제한이 있다”며 “제한 철폐를 권고(urge)한다”고 밝혔다.

3년마다 열리는 IARU 제3지역 총회에서 우리나라는 2012년에 이어 2회 연속 규제철폐 권고를 받았다.

이용석 KARL 국제위원장(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은 “지난해 10월 열린 총회에서 회원국 만장일치로 통과가 됐고 일본 도쿄에 있는 제3지역 본부가 지난달 말 서류로 공식 발표한 것”이라며 “2회 연속 규제철폐 권고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아마추어무선은 ‘금전적 이익 없이 취미로 하는 통신’을 말한다. ‘햄(HAM)’이라고도 불린다. 아마추어무선을 처음 시작한 세 사람의 이름 앞 글자를 땄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선 1957년 KARL을 조직했다. 20만명 내외 동호인이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우 유지태와 김하늘이 출연한 영화 ‘동감’이 아마추어무선을 소재로 활용했다.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아마추어무선 애호가로 유명하다.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2013년 4월 국내에서 제일 큰 아마추어 무선통신용 안테나 아래서 설치과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서 전 장관은 아마추어무선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2013년 4월 국내에서 제일 큰 아마추어 무선통신용 안테나 아래서 설치과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서 전 장관은 아마추어무선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다.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KARL이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장비 일련번호 기재’다. 아마추어무선 허가를 받을 때 반드시 장비 일련번호를 적는 규정을 문제 삼았다. 아마추어무선의 생명인 자유로운 장비 개조·변조·제작을 막는다는 것이다. 전파법 제84조에 따라 이 규정을 어기면 3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2009년 ‘아마추어무선 제도 개선안’을 건의하는 등 오래 전부터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KARL이 2004년 IARU 35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처럼 일련번호를 기재하도록 한 나라는 두 곳밖에 없었다. 27개국이 모든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석 위원장은 “외국은 허용기준만 지키면 아마추어무선 장비에 제한이 없다”며 “일련번호를 기재하라는 건 운전면허를 주고 지정한 차 한 대만 몰라 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케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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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무선을 담당한 미래창조과학부는 다른 입장이다. 미래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전파간섭’이다. 장비 출력을 마음대로 조정하면 다른 전파기기에 혼선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자동차를 등록하지 않으면 대포차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무선장비 일련번호를 등록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남북 군사대치 상황에서 안보위협도 고려해야 한다.

미래부가 단호한 입장이어서 장비 일련번호 기재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부는 다만 KARL 건의를 받아들여 일시 입국하는 외국인에 한해 장비검사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미래부 전파기반과 관계자는 “아마추어무선 장비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나라는 없다”라며 “일련번호를 기재하지 않으면 전파간섭 피해가 발생한 다음에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아마추어무선 대회참가 등을 위해 일시 귀국하는 외국인에 한해 완화해 주는 조치를 연내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