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방송통신산업에 ‘메기’가 필요하다

[기고]방송통신산업에 ‘메기’가 필요하다

수많은 경영 이론 중 ‘메기효과(Catfish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미꾸라지가 들어있는 수조에 천적인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돌아다녀 생존력이 더욱 강해지는 현상을 이론화한 것이다. 강력한 경쟁자 등장이 동기 부여로 작용해 활기를 불어넣고 기존 개체 경쟁력도 끌어올리는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세계적 경제·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도 인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설명하며 좋은 환경보다 역동적 환경이 오히려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하며 메기효과를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

반면에 메기효과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기능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메뚜기 현상’이다. 메뚜기 사육장에 천적인 거미를 집어넣었는데 거미 입을 접착제로 붙여 메뚜기를 잡아먹지 못하게 했음에도 메뚜기는 공포로 인해 몸속 에너지 소비가 증가했고 영양물질인 질소 체내 함량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망이 처진 메뚜기 사육장에 새들이 망 위로 올라온 메뚜기를 잡아먹자 메뚜기가 생존을 위해 높게 뛰지 않으면서 메뚜기 활동량과 번식률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메기효과와 정반대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요즘 방송통신 시장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이슈로 무척이나 소란스럽다. 지금 논쟁을 도식화하자면 인수합병이 시장에 ‘메기 효과’를 불러올지, ‘메뚜기 현상’을 초래할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으로 볼 수 있다.

인수합병 결과가 미래 일에 대한 현재 판단이기 때문에 과학 법칙과 같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논란이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 소용돌이에서 잠시 한걸음 비껴서 사안의 본질을 냉정히 살펴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인수합병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M&A가 침체 늪에 빠진 방송·통신 시장 위기를 돌파하는 계기로, 산업 체질개선과 활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반대진영에서는 강력한 사업자 등장으로 경쟁이 왜곡돼 결과적으로 산업과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M&A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어느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양측 주장도 일정 부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인식 수준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방송·통신 산업이 현재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두 산업 모두 시장포화 등으로 위축되고 있으며 뚜렷한 미래 먹거리도 보이지 않는다. 20년 넘게 견고한 성장을 해 온 통신 산업은 작년 사상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권역’이라는 제도적 장치에서 안정적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케이블 방송은 빠르게 쇠락하고 있다.

분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고 처방전이 필요하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위기를 외치지만 정부나 시장 어느 누구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개선할 의지나 노력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방송·통신 산업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빙산에 부딪힌 타이타닉처럼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M&A로 우려되는 부분이 현실화될 수도 있고 기대보다 효과가 적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 안주해 서서히 고사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우려에도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중차대한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선택이 어렵다면, ‘이케아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볼 필요가 있다. 1여년 전 ‘가구공룡’인 이케아가 우리나라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국내 가구업계가 잠식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하지만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당초 우려와 달리 국내 주요 가구업체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 실적이 오히려 좋아졌다고 한다. 이케아 등장으로 인테리어에 소비자 관심이 늘어났고 이케아 경쟁력에 맞서 국내 업체가 자구 노력으로 경쟁력을 키운 결과로 볼 수 있다.

‘메기 효과와 메뚜기 현상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활력을 잃고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우리나라 방송통신 산업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생기를 불어넣어줄 ‘메기’다. 다만 메기 등장이 웅덩이를 패닉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적정한 규칙과 조건이 주어진다면 모두에게 필요한 양질의 산소 공급이 원활히 이뤄질 것이다.

우형진 한양대 교수 hyungjinw@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