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영국 경제경영연구센터(CEBR) 발표에 따르면 한국 경제규모는 2015년에 11위를 기록했고 2030년 세계 7위 경제대국이 될 전망이다. 2015년 발간된 ‘OECD 과학기술산업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는 지난해 GDP 대비 세계 2위를 기록했고 순수 연구개발비 투자 규모도 세계 6위권에 진입했다. 지난 2011년 이후 우리나라 정부 R&D 증가율은 여타 선진국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여 왔다.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한 것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위한 R&D 투자 산물이고 한국이 현재 경제규모보다 훨씬 더 크게 R&D 투자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R&D 확대 이면에는 여러 가지 불편한 진실이 회자된다. 이웃나라 일본이 연속 2년째 노벨 물리학상을 배출하고 중국도 이러한 수상에 합류하는가 하면 불과 수년 전 아이폰과 삼성 짝퉁 제조업체로 비웃음을 사던 ‘샤오미’가 끊임없는 혁신으로 ‘대륙의 실수’를 넘어 혁신전도사로 거듭난 사실을 보면 우리 정부의 막대한 R&D 지원 효율성에 의구심이 든다.
우리 현실은 기초과학과 이공계 R&D 지원 사업은 ‘할 수 있는 연구’에만 매달리고 논문 수나 특허 수에 따른 단기 연구성과 위주로 평가된다. 인문사회 R&D 지원 사업은 ‘연구를 위한 연구’를 지원해 연구 성과 활용도가 낮다. 21세기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고 상호 협업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집단지성 시대에 걸맞지 않는 단독·폐쇄형 연구가 많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 R&D라는 점에서 국가와 사회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지, 시대가 요구하는 개방형 융합과 협력 연구를 하고 있는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차제에 인문사회 R&D도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 인문사회에서도 선진국형 R&D 투자 핵심 방향처럼 전통 지식 한계를 뛰어 넘는 새로운 지식창출을 위해 융합적이고 협업적인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 사회 어젠다 도출을 위한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선진국이 과학기술 자체만으로는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보고 2000년대 초에 인문사회 기반 소프트 파워 지식과 과학기술을 결합해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R&D 전략 패러다임 시프트를 진행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 전략은 한참 뒤처졌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문제와 예측할 수 없는 각종 재난, 끊임없이 새로 출현하는 신기술 수요 등을 해결하고 따라잡으려면 국가 어젠다 해결 연구로 R&D 패러다임 시프트가 요구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려면 개인 역량에 의존하기보다 집단·선제적 R&D 대응이 필요하고 국가사회차원 대비가 중요하다. ‘유엔미래보고서 2045’는 인류 지속가능성을 위해 세계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할 기후변화·물 부족·빈부격차·성차별·에너지 등 15개 도전과제를 선정하고 집단지성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단순한 미래예측이 아니라 인류와 개별 국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메시지다. 우리나라 인문사회 R&D 지원도 미래 인류의 도전적 과제이고 인류보편적인 어젠다이자 바로 대한민국이 당면한 국가·사회 어젠다이기도 하다.
국내 최대 R&D 지원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은 개인 연구자 창의성에 초점을 둔 상향식 연구지원과 병행해 전략적 국가·사회 어젠다 중심 하향식 연구지원을 새롭게 바꾸는 방향으로 인문사회 분야 R&D 지원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이런 방향으로 정부·산업계·연구자 모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다.
서태열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tyseo@nrf.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