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사업 재편 작업이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 사태로 주춤했지만 계열사 간 삼성카드 지분 거래를 시작으로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작업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카드 해외 매각설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전량을 인수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삼성생명은 지분 인수로 삼성카드 지분 71.86%를 보유한 1대 주주가 된다. 지분 인수 금액은 1조5400억원이다. 삼성생명은 지분 취득 목적으로 ‘사업 시너지 확대 및 안정적 투자수익 확보’라고 공시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사업에서 시너지를 제고하기 위한 지분 인수”라며 “두 회사가 보유한 고객 정보를 공유해 공동 마케팅을 하거나 고객관리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분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을 신규사업 투자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카드 지분 매각으로 자산 효율화도 도모했다는 설명이다. 관련업계는 이번 지분 인수가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룹 전체는 삼성물산이 지주회사가 되고 삼성물산 아래에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가 되는 시나리오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회사 지분요건 30%를 확보하고 자회사 1대 주주가 돼야 한다. 삼성생명은 이전에도 삼성카드 지분 30% 이상을 보유했지만 삼성전자보다 지분율이 낮은 2대 주주였다. 이번 지분 인수로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삼성생명이 이날 자사주 300만주를 취득한 것도 금융지주사 전환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10월에도 자사주 650만주를 취득한 바 있다.
물론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서는 중간지주사법이 통과돼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사전 준비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당장 금융지주사로 전환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면서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여부를 떠나서 (삼성카드) 매각설이 불식되는데다 삼성카드 자본효율화에 대한 기대감이 배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 계열사 재편 가시화로 정보기술(IT), 화학, 금융 등 삼성그룹 주요 사업 지배구조 개편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손사레를 치지만 가칭 ‘삼성금융지주’로 가는 첫단추가 꿰어지면서 그룹 양대 축인 전자·IT를 중심으로 한 가칭 ‘삼성전자지주’ 가능성도 점쳐진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아킬레스건은 ‘순환출자’다.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을 기초로 2013년 말 개정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대기업 신규순환 출자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통합 삼성물산 출범으로 순환출자 고리 세 개가 더 강해졌다”며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 매각을 명령한 것도 장기적인 지주사 체제 전환을 가늠케 한다.
업계는 삼성그룹이 LG, GS와 같은 지주사 체제를 선택한다면 삼성전자 인적분할을 통한 투자회사, 사업회사 분리 뒤 투자회사의 삼성물산 합병을 통한 지주사 ‘삼성’ 출범을 유력한 방안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유한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5%를 자연스레 삼성전자 지분으로 전환해 지분율 0.5%뿐인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을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 과정에서 실권주 발생시 일반공모 청약 참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SDS 보유 지분 2.05%를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각 주식수는 158만7000주이며, 금액은 약 3800억원 규모다.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국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한다.
한편 삼성 측은 이번 지분 거래가 금융지주사 전환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삼성생명이 굳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전량을 인수할 필요도 없었다”며 “중간지주사법이 언제 통과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준비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