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노 물질은 서로 붙으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나노 기술을 가진 기업도 뭉치고 협동해서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린 ‘나노테크 2016’에 참가한 기업체 대표가 한 말이다. 나노 분야 중소·중견 기업이 모인 자리에서 기업 간 단결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체 산업으로 시야를 넓혀 생각하면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산업 간 경계는 사실상 허물어졌다. 센서와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인지하며 달리는 자율주행차는 통신으로 외부와도 연결된다. 이 차는 기계장치인가 전자장치인가. 전기차는 또 어떤가. 이제 ‘내 기술’ ‘내 영역’만 내세워서는 사업 성공이 어렵다는 말이다. 전자산업 국가대표 삼성, LG가 자동차 부품 사업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나노테크 전시회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행사는 ‘나노’라는 단어만으로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상당수 나노 기술이 신소재 개발로 연결된다. ‘소재 전시회’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나노 기술이 3D프린터 발전을 견인할 가능성을 보였다. 로봇과 에너지 관련 전시회가 같은 공간에서 열렸다. 이종 산업 간 융합을 촉진하려는 주최 측 의도다.
기술과 산업은 끊임없이 흐른다. 물줄기처럼 흐르는 기술은 다른 물줄기를 만나 폭포가 되기도 하고 거대한 강이 되기도 한다. 줄기를 찾지 못하고 사장되는 기술도 있다. 지하로 사장된 기술이 수맥을 만나 갑자기 솟구치기도 한다.
기술이 없어서 망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술 홍수 시대다. 기술 자체보다 물길을 잘 타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 만큼이나 산업 동향을 읽는 일이 중요해졌다. 어떤 융합으로 어떤 시장을 공략할지 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책도 새 패러다임을 갖춰야 한다. 스마트카, 드론 같은 신산업은 부처 간 영역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영역 다툼이 생긴다. 스마트카는 부처 간 조율 난항으로 발목이 잡힌 대표적인 사례다. 각자 영역 논리를 고수하려 부딪혀서는 융합이 필수인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