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양자전쟁 승리하려면 "투자 10배 늘려야"

[이슈분석]양자전쟁 승리하려면 "투자 10배 늘려야"

SK텔레콤 컨소시엄과 미래창조과학부가 힘을 모아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등 전국 다섯 곳에 양자암호통신 국가시험망을 구축한 것은 양자(Quantum·量子)기술 상용화를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도 실험실을 벗어나 양자역학 세계를 실생활에 구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시장 선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 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있어 자칫 상용화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감돈다. 우리가 양자암호통신을 넘어 양자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자산업 선도국 ‘첫 걸음’

양자암호통신 국가시험망은 분당과 성남·수원·용인·양평을 잇는 네 곳과 대전 한 곳 등 모두 다섯 곳에 256.8㎞(왕복) 규모로 구축됐다. 유선통신 구간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SK텔레콤 컨소시엄은 이곳에서 국가 차원 양자암호통신 관련 연구개발(R&D) 작업을 수행한다. 앞으로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수도권과 대전권을 잇는 광대역 양자암호통신 시험망도 구축한다.

양자암호통신은 양자물리학의 독특한 성질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상용화한다면 도청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과학자 사이에 알려진 기술이다.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도청 위험으로부터 100% 안전한 ‘꿈의 기술’로 불린다.

이 때문에 통신은 물론이고 핀테크나 사물인터넷, 스마트카, 스마트그리드, 원격의료 등 정보통신기술(ICT) 전반에 큰 파급력을 가졌다. IQC가 2014년 예측한 자료에 따르면 양자암호통신 산업은 연평균 28% 성장해 2033년 230억달러(약 2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날 분당 SK텔레콤 종합기술원에서 열린 시연에서 도청을 시도하자 곧바로 경고등이 켜지며 사이렌이 울렸다. 곽승환 SK텔레콤 퀀텀 테크랩장은 “도청이 감지되면 암호 생성을 중단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며 “우리가 개발한 양자암호통신 핵심장비는 해외 경쟁사보다 크기는 3분의 1 수준이지만 성능은 더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민간 차원에서 소규모로 이뤄지던 양자 기술 연구가 궤도에 오른 것은 2014년 정부가 육성전략을 내놓으면서다. 미래부는 2014년 12월 ‘양자암호통신(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전략’을 확정 발표하고 정부 차원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나라 양자산업 밑그림이 그려진 순간이다. 이번 테스트베드 개소식도 이 전략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이 전략은 ‘양자암호통신 글로벌 선도국가 진입’을 목표로 2020년까지 1119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연간 200억원꼴이다. △양자암호 분배기술 상용화 △세계 1등 기술 5개(단일광자 검출소자·광원 기술 등) 확보 △전문인력 3000명 양성이라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치면서 우리나라 양자 기술은 일취월장했다. 우리보다 10년 먼저 출발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1년 분당 종합기술원 내에 ‘퀀텀 테크랩’을 만든 SK텔레콤은 4년여 만에 단일광자검출기술·간섭계기술·후처리기술 등 양자암호통신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로·코위버·쏠리드 등 국내 중소기업과 공동으로 핵심장비 국산화에도 앞장섰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시연하면서 세계적 기술력을 자랑했다.

◇세계 각국 치열한 투자 경쟁…상용화 뒤처질라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양자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마치 달에 착륙하는 것만큼이나 큰 의미를 지니면서도 그만큼 어려움이 뒤따른다.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이유다.

미국은 이미 2008년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을 수립하고 연간 1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2005년 보스턴에 시험망을 구축했다. 우리보다 10년을 앞선 셈이다. 국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투자액 차이가 너무 크다. 우리 투자규모는 호주(연 260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은 ‘퍼스트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2012년부터 4년간 43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투자금액이 작은 것 같지만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미 양자산업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6년 앞선 2010년 도쿄에 양자암호통신 시험망을 깔았다. 영국은 2014년 ‘양자기술 산업화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무려 48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도 무섭다. 표면적인 투자액은 5년 간 2900억원이다. 하지만 중국 특성상 이 금액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실제로는 훨씬 큰 금액을 투자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믿는다. 중국은 올 연말까지 사상 최장인 베이징~상하이 2000㎞ 구간에 양자암호통신 시험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북한마저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는 산업적 측면은 물론이고 군사적 관점에서도 양자기술 상용화가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속하게 대규모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장비와 솔루션을 개발해 양자 생태계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어느 한 두 대기업 힘만으로는 전국 수준 상용화를 이루기가 어렵다. 하지만 작년 말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퀀텀특별법은 제대로 검토도 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형편이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석좌교수는 “각국이 기본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남은 건 상용화를 위한 속도경쟁”이라며 “지금보다 10배 이상 투자를 늘려야 상용화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국내 통신 업계가 새로운 먹을거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