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가전략컴퓨팅계획’을 직접 승인하며 ‘슈퍼컴퓨터 최강국’ 자리를 되찾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앞으로 10년 안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인 중국 ‘톈허-2’보다 약 30배 빠른 엑사플롭스, 초당 100경회 실수 연산을 수행하는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2013년 이후 줄곧 슈퍼컴퓨터 세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중국도 이에 뒤질세라 지난 1월 말 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 상반기에 톈허-2가 등장한 이후 큰 변동이 없던 최상위권 슈퍼컴퓨터 순서가 곧 엎치락뒤치락할 전망이다.
우주 개발을 두고 경쟁하던 냉전 시대처럼 이제 슈퍼컴퓨터를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흔히 말하는 슈퍼컴퓨터는 일반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대용량 정보나 계산을 초고속으로 생산, 처리, 활용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말한다. 슈퍼컴퓨터가 국가경쟁력 척도로 주목받는 이유는 첨단 과학기술에서 쏟아져 나오는 ‘21세기의 원유’ 빅데이터를 가공할 적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팅 인프라와 활용기술 확보는 과학기술혁신, 산업 경쟁력, 삶의 질 향상, 국가 위기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국가 경쟁력 강화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로 등장했다. 에너지, 항공우주, 기상 등 우주와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는 복잡한 거대 연구는 물론 일상생활과 밀접한 제품 개발이나 문화 콘텐츠 제작에 이르기까지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1년 세계 최초로 ‘고성능컴퓨팅법’을 제정하고 지속해서 슈퍼컴퓨터 개발 및 활용에 힘써 왔다. 일본은 2011년 세계 1위 슈퍼컴퓨터에 오른 ‘K 컴퓨터’를 비롯해 자체 슈퍼컴퓨터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은 유럽연합(EU) 전역을 연결하는 슈퍼컴퓨팅 공동 활용 체계인 ‘프라이스(PRACE)’를 통해 25개국이 슈퍼컴퓨팅 인프라를 공동으로 활용하고 있다. 슈퍼컴퓨터 신흥 강국인 중국은 국가 주도로 집중 투자에 나섰다.
우리도 지난 2011년 ‘국가 초고성능컴퓨터 활용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슈퍼컴퓨터 활용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새로운 슈퍼컴퓨터 시스템 도입과 개발 사업에 908억원을 투입하는 내용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국회를 통과, 2017년에는 새로운 범용 슈퍼컴퓨팅 시스템이 국내 연구자들에게 선보이게 될 전망이다.
이는 슈퍼컴 4호기 ‘타키온2’ 시스템보다 약 70배 빠른 25페타플롭스(1 Petaflops는 초당 1000조회 연산 수행) 성능을 보유하게 된다.
이와 함께 국산 슈퍼컴퓨터 개발 초석이 될 1페타플롭스급 프로토타입 컴퓨터도 우리 과학자들 손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새로운 슈퍼컴퓨터 5호기 구축으로 활용 수요를 충족시켜 준다면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과학기술 측면에서 기초〃응용과학 및 공학 분야 거대 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사회 측면에서 기상 및 기후 예측, 감염병 예측, 재난 방지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사회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셋째 경제 측면에서 공공〃민간 영역에서 제조업 혁신은 물론 신사업 육성에서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슈퍼컴퓨터가 모든 일을 해결해 줄 만능열쇠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나라가 앞 다투어 슈퍼컴퓨터 활용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그만큼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방증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새로운 슈퍼컴퓨터 시스템 구축을 발판 삼아 우리나라 국가경쟁력 향상을 기대한다.
오광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슈퍼컴퓨팅서비스센터장 koh@kis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