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2일 개막한 ‘MWC 2016’에서 가장 주목받은 아이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가상현실(VR)’이다.
전시회에 참가한 주요기업이 VR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대중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VR 생태계 주요 기업이 우리나라에 포진한 만큼 글로벌 V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콘텐츠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MWC 2016 키워드는 ‘VR’
삼성전자와 LG전자는 VR에서 정면충돌했다. MWC 2016에서 가장 주목도 높은 두 기업이 같은 날 언팩 행사를 열면서 약속이나 한 듯 VR 제품을 공개한 것이다.
휴대가 간편한 VR 카메라를 동시에 선보이면서 일반인이 쉽게 VR 영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시장 확대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자가 단순한 VR 수용자에서 VR 콘텐츠 생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VR 영상 촬영이 가능한 ‘기어 360’의 뛰어난 기기적 성능을 강조했고, LG전자는 ‘LG 360 캠’에서 상대적으로 편리한 휴대성을 강조했다. LG전자는 VR기기 ‘LG 360 VR’도 처음 공개하며 118g의 가벼운 무게에 초점을 맞췄다.
가격 경쟁도 관심이다. 카메라를 사려면 이를 VR로 볼 수 있는 기기도 사야 한다. 스마트폰이 재생을 도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VR 시장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대중적 가격이 책정돼야 한다.
MWC 2016에 참가한 대만 HTC는 개막 첫날 VR기기 ‘바이브(Vive)’를 공개하며 이달 29일부터 799달러에 선주문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돈 약 98만원이다. 게임에 특화된 고급모델임을 감안해도 비싸게 느껴진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아직 출시일정과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다.
노키아는 VR 카메라 ‘오조(Ozo)’를 공개했다. 스텔스 전투기를 연상케 하는 미래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카메라는 가격이 6만달러(약 7300만원)에 달한다. 현장에서 만난 노키아 관계자는 “일반인이 사용하기는 비싸다”며 “영화촬영 등에 사용되는 전문가용 제품”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중소기업 ‘무버’가 전문가용 VR 카메라 ‘무브릭’을 공개했다.
퀄컴은 부스 한켠에 VR체험관을 마련하고 VR기기용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820 VR’ 데모버전을 공개하며 VR 시대를 대비했다.
VR체험관에는 종일 긴 줄이 이어지며 VR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삼성전자 기어VR과 LG전자 LG 360 VR 체험관은 물론이고 SK텔레콤과 KT, T모바일 등 통신사가 VR서비스 소개에 적극 나섰다. 심지어 자동차 회사 포드도 부스 내에 VR체험관을 꾸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22일 기조연설에서 “VR이 5세대(5G) 통신 시대 킬러 앱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콘텐츠 적극 지원으로 VR ‘기선제압’ 필요
VR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어느 때보다 높다.
IHS 이언 포그 수석애널리스트는 “휴대폰 시장이 성숙한 곳에서 제조사는 고객이 스마트폰을바꾸도록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며 “삼성전자는 기어 360 등 VR기기에 힘입어 갤럭시S7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IDC는 중국 VR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기기 판매량이 올해 48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작년보다 476% 늘어난 것이다.
디지 캐피털은 VR 시장이 2020년 300억달러(약 3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VR 영상합성 전문업체인 비디오 스티치 사의 클레어 반 드 부르드 프로젝트 매니저는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대중성 있는 VR기기를 일제히 출시했다”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급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을 우리나라가 석권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생태계 구조가 우리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VR업계는 VR생태계를 ‘카메라-촬영-영상합성-서비스-단말’로 세분화한다. 카메라~영상합성은 콘텐츠 제작 과정이다. 서비스와 단말은 콘텐츠 유통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서비스와 단말에 강하다. 통신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5세대(5G) 통신 상용화가 논의될 정도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디바이스 제조기술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 업체들이 싼 가격으로 밀고 들어온다지만 VR기기는 일정한 기술장벽이 존재한다. 디스플레이 기술이 없으면 화질이나 어지럼증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콘텐츠 제작이다. VR 카메라를 만드는 무버 같은 중소기업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이 회사는 미국 고프로와 경쟁할 정도로 기술력을 갖췄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대기업과 기술개발 경쟁이 쉽지 않다.
특히 소프트웨어가 약하다. 여러 영상을 합쳐 360도로 만들어주는 소프트웨어 기술은 비디오 스티치, 칼라(Kolor) 등 외국업체가 장악했다. 칼라는 고프로에 인수됐다.
뒤집어 말하면 VR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고품질 VR 콘텐츠를 쏟아낼 수 있다면 우리나라가 글로벌 VR 생태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MWC 2016 현장에서 만난 한 VR 업체 관계자는 “VR 밸류체인 대부분에 우리 기업이 포진하고 있다”며 “초기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 자체 생태계를 만든다면 글로벌 VR 생태계에서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