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20년 전 업계에서 가장 유능하던 광고인을 냉동인간으로 보관하다가 지금 현업에 투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소셜미디어, 브랜디드 콘텐츠, 모바일 온리, 브랜드 저널리즘, 커스터마이즈드 마케팅 등 낯선 용어로 가득한 광고주와의 만남에서 그는 대화조차 잇기 어려울 것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업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광고회사(또는 광고대행사)에 다닌다”고 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광고회사 또는 광고대행사’라는 ‘업(業)’의 규정만으로 광고인이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없게 됐다.기술 진보와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 소비자 구매 및 미디어 소비행태 변화는 광고계의 양상을 바꾸었다. 신문, TV 등 전통 매체 중심의 광고만으로 광고주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됐다. 전통 매체 중심의 광고대행업은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서 가치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세계 최대 광고대행사 ‘WPP그룹’은 2007년부터 디지털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인수합병(M&A)에 나서서 디지털, 데이터, 미디어 부문 회사가 전체 계열사 3분의 2 이상이 됐다. 마틴 소럴 WPP 회장은 2018년까지 회사 매출에서 45%가 디지털 부문에서 나올 것이라 내다봤다.
세계 5위 ‘덴츠’는 2012년 이지스그룹 인수를 시작으로 디지털 에이전시, 퍼포먼스, 데이터 분야에서 M&A를 진행해 2014년 이후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정보기술(IT) 솔루션 기업, 경영 컨설팅 기업은 디지털 광고로 사업을 확대한다. 홍보(PR) 회사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디지털 기반 대행사는 전통 매체의 광고 영역 업무에도 손을 내민다. 기술 발전, 소셜과 디지털 시대 도래는 광고 산업 경계를 허물었다. 또 산업 간 융·복합화의 새 양상은 새로운 기업이 디지털 경쟁력을 무기로 광고 산업을 이끄는 세상을 만들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이용자는 1600만명을 넘었고, 스마트폰 이용 경험률은 지난해 95% 이상이다. 30대 이하는 스마트폰을 PC나 TV보다 더 오래 접한다. 디지털 동영상 콘텐츠 소비량은 세계 최고다.
디지털 기기 사용률, 소셜미디어 이용률, 접촉 시간 등 디지털 채널 경험 및 이용률은 세계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종합 광고대행사의 소셜과 디지털 활용 마케팅은 아직 질과 양 모두 해외에 비해 부족하다. 대홍기획은 수년 전부터 미래 광고시장에서 디지털 경쟁력과 역량 제고를 위해 30여년 동안 시도하지 않은 영역에 도전했다. 맞춤형 디지털 매체 구매 시스템(DSP) 도입 및 실시간 디지털 매체 경매 방식(RTB) 직접 수행을 시작했다.
신 성장 동력으로 모바일 플랫폼 ‘기프트엘’을 구축, 실행해 올해 500억원 매출을 목표로 뒀다. 소셜 전문가로 구성된 소셜마케팅 전문팀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고, 여러 소셜캠페인 성공과 소셜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디빅스’ 마련 등 도전을 지속하고 있다.
찰스 다윈은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도태와 소멸뿐이다. 전통 매체 기반의 ATL 광고 사업을 수십년 동안 중심에 둔 국내 광고업계에 시대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광고업계 앞에는 갈림길이 놓여 있다.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하고 이를 기업 활동에 반영하는 걸 ‘광의의 마케팅’으로 본다면 단지 광고 대행에 그칠 것인지 새로운 마케팅 해법을 제공하는 ‘마케팅 솔루션 회사’로 거듭날 것인지에 대한 과제다. 시대 변화에 얼마나 능동으로 대응하는지가 관건이다. 새로운 파도에 끊임없이 도전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역수행주 부진즉퇴(逆水行舟 不進卽退)’를 되새기는 요즘이다.
김상진 대홍기획 디지털마케팅본부장 sangjink@daeh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