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를 논할 정도가 아니다.”
이세돌 9단은 지난달 22일 구글 ‘알파고’ 대국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앞서 벌어진 알파고와 판 후이 2단 대국 결과를 보면 자신에게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바둑 전문가와 애호가 전망도 비슷하다. 이 9단이 알파고를 이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 9단을 상대할 알파고는 말이 없다. 인간과 달리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지난해 판 후이와 대국 이후 묵묵히 실력을 쌓았다.
이것이 알파고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인공지능이 ‘인간계’ 최고수를 꺾기엔 무리라고 평하면서도 대놓고 폄하하지는 못한다. 알파고는 추정하기 힘든 양의 기보로 자신을 단련시켰다. 알파고 산파 역할을 한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승부를 ‘50대 50’이라고 점쳤다.
대국이 가까워질수록 바둑계 시각도 변화가 감지된다. 초기에는 시쳇말로 ‘오대빵’ 승리가 당연할 것으로 예상됐다. 우스갯소리로 이 9단이 ‘로또에 맞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터무니없이 약한 상대로 거두는 승리 대가가 100만달러, 우리 돈으로 10억원을 넘는다면 복권 당첨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정동환 한국기원 홍보국장은 “대국 발표 직후에는 이 9단의 일방적 승리를 점쳤지만 최근 알파고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정 국장은 “이 9단이 다섯 판 중 한 판만 져도 전체 대국에서 패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글 역시 이를 염두하고 대국 진행계획을 수립했다. 5회 대국을 5전 3선승제가 아니라 무조건 다섯 판을 모두 진행하는 것으로 했다. 다섯 번 승부에서 한 번이라도 기회를 잡겠다는 포석이다.
이 9단도 긴장감을 갖고 대국을 준비 중이다. 바둑계에 따르면 이 9단은 알파고가 판 후이와 대결 이후 인터넷상에서 벌인 대국 기보를 입수해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서는 알파고로 추정되는 바둑인(?)이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알파고도 세기의 대결을 충실히 준비했다. 방대한 기보 분석과 함께 이 9단을 겨냥한 맞춤형 학습을 반복했다.
현재로서는 알파고 실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첫 대국을 가져봐야 알파고가 어느 정도 진화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프로 6단인 김찬우 에이아이바둑 대표는 “지금까지 알려진 실력으로는 알파고가 이 9단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며 “혹 이 9단이 한 판을 잃더라도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알파고 실력에 의한 것인지, 이 9단이 방심했거나 실수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기존 알파고 대국 결과를 토대로 이 9단이 유의해야 할 점도 지적했다. 김 대표는 “알파고는 전투 중심으로 승부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 9단이 지나치게 여유로운 바둑을 두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호준 SW/콘텐츠 전문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