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은행원도 모르는 `ISA`

“너무 오랜만에 전화 드렸죠. 은행 들어와서 기자들한테 전화하는 건 처음입니다. 체면 불고하고 ISA 가입 좀 부탁드리려고요.”

한 시중은행 지점 팀장의 휴대폰 번호가 뜨고 전화기가 울렸을 때 의아했다. 본점에 있을 때 기자와 취재원으로 인연을 맺고 그가 서울 변두리 지점으로 간 뒤 1년만의 통화였기 때문이다.

안부를 묻는 척 했지만 맴맴 돌다 민망한 듯 슬며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 얘기를 꺼냈다. 사전 예약을 한 뒤 자신에게 직접 와서 가입해야 핵심성과지표(KPI) 점수에 반영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사전 예약으로 고객을 선점하기 위해 모든 직원이 휴가도 반납하고 전화통을 붙들고 있다고 한다.

지점에 내려진 할당은 계좌 1000여개. 직원 한 명당 계좌 100개 이상은 유치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정책으로 추진하는 상품인 만큼 각 은행의 판매 실적이 줄 세우기가 되고, 최고경영자(CEO) 간 경쟁까지 연결된다.

그는 “돈 넣어 놨다가 다시 빼 가세요. 은행원인 저도 확실하게 추천을 못하겠어요”라고 털어놨다.

ISA는 예·적금과 펀드, 파생결합증권(ELS) 등을 한 데 모은 말 그대로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이다. 무턱대고 가입하기엔 위험하다는 얘기다.

은행이 난생 처음 판매하는 ‘일임형 ISA’는 불과 한 달 전에 허용됐고, 투자 모델 포트폴리오도 아직까지 완료되지 않아 고객에게 어떻게 상품을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 했다.

그 사이 은행과 증권사들은 상품 내용도 모른 채 고객 모으기에만 혈안이 됐다. 금융위원회에서 ‘만능통장’이라고 홍보하지만 현장에선 냉담한 반응이었다. 너나없이 한 명이라도 가입 고객을 늘리려는 성과에만 집착하는 동안 고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금 보장이 되는 상품이 아닌 이상 소비자는 상품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은행원이 먼저 상품에 대해 면밀히 공부하고 소비자를 맞이해야 불완전 판매를 막을 수 있다. 급히 먹은 밥은 체한다.

김지혜 금융산업/금융IT 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