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106>인공지능에 투자를 한다고?

[이강태의 IT경영 한수]<106>인공지능에 투자를 한다고?

어느날 홀연히 나타난 알파고가 한국 사회에 인공지능(AI)이라는 화두를 강하게 던졌다. 알파고 팀은 한국기원의 명예 9단 인증서를 들고 당당하게 미국으로 돌아갔고, 이세돌 9단은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휴가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자칭 AI 전문가들이 컴퓨터공학과 정원이 몇 년째 그대로고, 기초 과학을 강화해야 한다며 소프트웨어(SW) 인력을 제대로 대우해 줘야 한다는 등 후광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AI 전문가들의 힘찬 부채질에도 결과는 뻔하다. 이제까지의 관례로 보면 2~3주 이내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모두 AI에 대해 잊고 다른 주제로 몰려갈 것이다. 더군다나 곧 국회의원 선거가 있지 않은가.AI가 우리에게 과학기술의 경이로움을 깨우쳐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든지 AI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괴담 수준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면도 있다. 누군가의 돈을 빼앗을 때 가장 효과 높은 수법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다 하는데 우리도 해야 한다든가 지금 안 하면 우리만 뒤진다든지 중국이 뒤쫓아 오고 있다든지 하는 감정 비교로 투자 강박관념을 조장한다. 모든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모르면 두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파고 앞에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큰절을 할 태세다.

우리나라가 지금 과학기술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할 것이 어디 AI뿐인가. 우리에게 변변한 운용체계(OS)가 있었는가. 하드웨어(HW)나 SW가 있었는가. 전사자원관리(ERP)든 애플리케이션(앱)이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것이 있었는가. HW는 어떤가. 우리에게 서버나 네트워크 장비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장비가 있었는가. 과학기술 교육 환경은 어떤가. 수능이 어려우면 사교육비가 는다고 수능을 쉽게 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공계에서 공부 잘하면 공대보다는 의대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는가. 반값등록금 투쟁을 하다가 결과적으로 청년 실업률이 10% 넘지 않았는가. 이런 빈약한 교육 현실에서 과연 과학기술 인재가 양성되고 이들에 의해 과학기술이 융성할 수 있을까.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다들 AI에 집중 투자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 AI가 미국보다 4년 뒤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중국이 6개월이면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하는 보고서도 있다. 이런 단편의 비교 보고서 덕분에 심지어 알파고를 2~3년 안에 따라잡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면 무섭기조차 하다.

과학기술은 건설 공기를 앞당기듯 의지만으로 당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I 관련 정부 예산을 조원 단위로 올린다고 해서 AI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한국형 알파고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구글이 딥마인드라는 50명의 작은 회사를 약 4200억원에 사서 10여년 동안 최고 인재를 배치해 알파고가 나왔다. 탄탄한 기초과학 위에 창의 인재의 열정이 결실을 맺고 있다.

어느 과학기술이든 조금 파고들어 가면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것이다. 융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때 과학기술 시너지는 더욱 중요해진다. AI도 독립 분야가 아니다. AI 투자를 강화하겠다면서 관련 프로젝트 몇 개 띄우고 전문기관에 연구비 지급한다고 해서 우리가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AI는 과학기술 기초 위에서 자라는 나무에 열린 수많은 과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과학 나무`에는 지금의 AI,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무인자동차, 빅데이터, 모빌리티, 클라우드, 바이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학문에서, 과학에서 지름길이란 없다. 아이의 키가 안 자란다고 성장 호르몬 놓듯 과학기술을 육성하려고 하면 안 된다.

다른 나라에서 수 세기에 걸쳐 연구하고 투자한 과학기술의 업적을 마치 우리가 하려고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든지, 우리가 하면 다르다는 식의 1970~1980년대 의식으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정부는 우선 공교육부터 정상화하고 창의 인재 양성에 장기 투자를 하면 된다. 과학기술 투자는 기업의 몫이다. 그래야 실용 과학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사회가 어떤 충격 사건을 겪을 때마다 전문가를 불러서 절묘한 아이디어를 찾는 척 하다가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이 곧 다 잊는 그런 소동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AI가 던진 우리나라 과학기술 민낯의 충격을 이세돌 9단의 인간적 매력으로 덮고 그냥 잊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