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예상보다 10만원가량 싼 40만~50만원대 아이폰SE를 내놓은 것은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화웨이 등 경쟁사와 달리 프리미엄 모델에 주력해 온 애플이 보급형 모델로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적하겠다는 의지다.
◇애플, 프리미엄-중저가 투트랙 전략
아이폰SE 가격은 16GB 모델이 399달러(약 46만원), 64GB 모델이 499달러(약 58만원)다. 외형은 아이폰5S와 유사하지만 성능은 지난해 9월에 출시된 아이폰6S와 같은 수준으로 높였다. 2014년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 출시 이후 1년 반 만에 다시 4인치 제품을 내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애플이 고마진 전략을 벗어나 4인치 보급형 제품을 내놓은 것은 기본에 충실한 마케팅 전략이다. 안드로이드 진영의 50만원대 이하 중저가폰은 애플에 큰 골칫거리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출고가가 내려가면서 가격 인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아이폰SE는 기존의 프리미엄 전략에 중저가 보급형 전략을 더해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응하겠다는 애플의 속셈이 담겨 있다. 경쟁사가 프리미엄과 중저가폰을 동시에 내놓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매년 가을 신제품을 내놓는 애플은 1~2분기 신제품이 없어서 고전했다. 중저가폰은 신제품 구매에 관심이 높지 않은 이 시기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애플이 상반기에 중저가폰, 하반기에 프리미엄폰 출시 전략을 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애플 실적 부진도 상반기 보급형 제품 출시의 이유 가운데 하나다. 회계연도 기준 지난 1분기(2015년 10~12월)의 애플 실적은 759억달러, 아이폰 판매량은 7480만대로 시장 기대에 못 미쳤다. 아이폰 판매성장률은 0.4%로, 2007년 처음으로 아이폰 첫 출시 이후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가격 인하 비결은 `규모의 경제`
아이폰SE는 크기가 작아졌지만 최신 프로세서인 A9 칩과 M9 모션 코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카메라는 1200만화소다. 성능 면에서는 아이폰6S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이폰6S 16GB의 국내 출고가는 86만9000원으로 아이폰SE와 4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크기를 줄였다고 해서 가격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애플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4인치 아이폰의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5S 서비스용 리퍼폰을 생산한다. 법적으로 단종 후 수년 동안 리퍼폰을 제작해야 한다. 애플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라인과 리퍼 제품용 라인을 별도로 갖춘다. 리퍼는 대부분 새로운 소재와 부품을 쓰지만 일부에서 재활용 부품을 사용하는 제품이다. 보험 계약 등으로 소비자에게 재공급할 때 리퍼폰을 쓴다.
휴대폰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SE는 디자인 자체가 오래된 제품이고 애플이 계속 만들어 온 제품으로,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고 하더라고 생산라인 등 여러 요소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서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성능은 높이면서도 비용은 40만원대로 낮출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비용을 절감하고 성능을 높여 보급형으로 내놓은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4인치 제품과 크게 달라지지 못한 게 아쉽다고 평가했다.
◇아이폰SE 수요 분명히 존재
아이폰SE의 성패는 가격과 4인치 제품 선호도에서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중저가폰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 애플은 북미 지역처럼 프리미엄폰 위주인 시장이 아닌 중국과 유럽 등 40만~50만원대 중저가폰 구매력이 높은 시장을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아이폰 사용자 세 명 가운데 한 명(38%)은 여전히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애플의 노림수다. 아이폰5, 아이폰5S, 아이폰5C 사용자 가운데 4인치 화면을 선호하는 애플 마니아가 아이폰SE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5인치 이상 대화면을 쓰는 패블릿폰 선호도가 높다. 4.7인치 아이폰6와 아이폰6S가 열풍을 일으킨 것도 화면 확대 중심의 디자인 변화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화웨이 등 경쟁사 역시 최소 5인치 이상 대화면 제품에 주력하고 있다.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아시아에서 40만~50만원대는 경쟁력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제조사는 30만원 이하의 다양한 중저가폰을 내놓는다.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 높은 보급형 제품이 지속 출시되고 있다 하더라도 아이폰SE의 성공 보장은 어렵다는 것이다. 장중혁 애틀러스리서치 부사장은 “그동안 애플이 타기팅하지 않은 시장에 새롭게 도전하는 것으로, 시장 반응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 “단기 성과보다 장기 관점에서 애플의 사업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더욱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