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미피케이션` `G러닝`으로 교육의 게임화를 꾸준히 연구해 온 위정현 중앙대 교수가 새 연재 `블랙박스`를 시작합니다.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 산업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격주로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블랙박스처럼 일상에서 화두를 찾는 작업입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 말은 유신시대가 종말을 고하기 직전인 1979년 9월 고 김영상 대통령이 한 말이다. 당시 유신체제 하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 독재 정치 상황을 외신 기자에게 설명했고 이를 빌미로 국회의원 직에서 제명당한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0월 26일, 정작 유신체제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손에 의해 종언을 맞이한다. 그 후 이 말은 아무리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려도 해도 결국 순리대로 간다는 것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말이 됐다.
얼마 전 오랜 만에 대학 동기 모임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나이에 접어든 친구들은 사회 주역이 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대화 내용이다.
예전 같으면 직장 이야기나 누가 승진했네, 누가 사업에서 성공했네 등이 대세였겠지만 이 날 화제는 단연 자식 이야기였다. 아들이 자신보다 바쁘다, 나가면 새벽에 들어온다, 아침에 얼굴 보면 다행이라는 둥 한탄을 늘어놓았다.
아들이 없는 나는 의아해서 뭘 하다 늦게 들어오냐고 묻자 핀잔이 돌아왔다.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 하는 거지.” 그런데 이야기는 엉뚱하게 갔다.
바로 옆 친구 왈 “게임이라는 거 만만하게 볼 게 아니데. 평소 게임 많이 하던 아들놈이 군대 갔는데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알겠다고 하데. 게임 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는구먼.”
친구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것이 오히려 나는 놀라웠다. 지금 보건복지부가 게임을 마약과 동일한 `악성 중독물질(?)`로 분류하겠다고 떠드는 판에 게임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기성세대가 하고 있으니.
넷플릭스가 제작해서 화제를 모은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는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콘솔로 FPS를 한다. 총을 쏘는 수준을 보면 `서든어택` 소령은 될 법한 실력이다.
미국 유명 드라마에 나올 정도면(언더우드는 미국 대통령까지 올라간다) 정치인이 게임을 한다는 것이 일반인 눈에 거슬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기야 미국인 가정에서 홈 파티를 할 때 자녀와 친구들을 위해 콘솔게임기를 설치해 주기도 하니 이상할 것도 없지 않나.
지난달 정부는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정신건강종합대책을 확정, 게임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
정부가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 등과 함께 5대 중독 중 하나로 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임 산업 탄생 이래 모가지를 가장 심하게 비튼 셈이다. 묘하게도 `그래도 새벽이 온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말이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jhwi@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