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 `상호출자제한·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을 새롭게 지정·발표한다. 직전 사업연도 대차대조표상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이 대상이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을 별도 지정하는 것은 이들 기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수많은 계열사와 대규모 자산을 악용해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하는 성격이 강하다. 대기업집단에 사회 책임감을 부여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한다는 의미도 있다.
대기업집단이 되면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된다. 계열사끼리 상호출자나 순환출자를 하면 가공 자본금이 생긴다. 하나의 계열사 위험은 연쇄 부도로 이어진다.
예컨대 자본금 10억원을 가진 A사가 B사에 7억원, B사가 C사에 5억원, 다시 C사가 A사에 3억원을 출자하면 총 자본금은 25억원이 된다. 실제로는 10억원밖에 없지만 15억원의 가공 자본금이 생긴다. 이 가운데 한 회사만 무너져도 연쇄 부도가 날 수 있다.
대기업집단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도 적용 받는다. 대기업집단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을 유지한 상태에서 계열사 간 부당한 내부거래 규모가 12% 이상이거나 200억원 이상일 때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이 밖에 소속 금융·보험사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고, 각종 공시의무가 생긴다.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며 대기업집단 제재는 점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는 대체로 최근에 도입된 제도다. 혜택 없이 규제만 늘어나면서 대기업집단 지정이 사업 혁신을 가로막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 외에도 금융·세제상 제한이 생긴다.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기준을 다른 법에서 차용하는 탓이다.
카카오가 추진하는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이 영향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은행법은 대기업집단을 포함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제한한다. 기존 금융사 외에 창의성과 혁신성을 갖춘 잠재 후보자 진입을 유도한다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취지와 배치된다. 은산분리 원칙도 중요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에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인터넷기업 네이버도 성장을 이어가면 규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네이버는 카카오보다 매출이 많지만 아직 대기업집단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해외 자회사 라인을 포함해도 자산 총액이 4조3850억원(2015년 말) 수준이다. 라인이 상장되면 보유주식의 가치가 높아져 네이버 역시 자산 5조원 룰을 적용받을 수 있다.
신흥 기업이 기존 대기업집단과 동일한 규제를 받으면 지속 성장이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산업 특성상 다국적 공룡제약사와 치열한 시장 경쟁을 벌이고 있다. 4000억원 이상을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차입 지급보증은 지주회사 셀트리온홀딩스가 했다.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으로 채무보증이 금지되면서 투자 재원 확보에 난관이 예상된다.
셀트리온은 “창업 이후 오랜 기간 투자와 R&D 끝에 이제야 해외 시장에서 상업 판매를 본격 시작했다”면서 “글로벌 공룡기업과의 경쟁에 대비한 체력 보강이 절실한 시점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호준 SW/콘텐츠 전문기자 newlevel@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
이호준 기자기사 더보기
-
정용철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