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사랑모아여성병원 박상준 원장
2012년 6월 SBS 스페셜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가 방송됐다. 자연주의 출산이란 불필요한 약물이나 의료시술 없이 산모의 자연스러운 출산 에너지만으로 분만하는 것이다.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출산이 이뤄져 아기와 임산부가 권리를 누리면서 소중한 가족 사랑을 체험할 수 있고, 산모의 자긍심을 높이고, 산후 우울증도 줄일 수 있다. 방송 이후 많은 산모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주의 출산을 위해 의료개입이 보다 적은 조산원에서 출산하는 산모가 많아졌고, 아예 자연주의 출산만을 표방하는 산부인과도 생겨나게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주의 출산 비용은 만만치 않다.
사실 그동안 많은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산모의 자연스러운 출산을 기다려주기보다 약물이나 주사를 사용했고 유도분만이나 제왕절개를 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산부와 아기의 권리를 고려하기보다 다른 여러 이유로 불필요한 주사나 수술을 선택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의학의 도움을 완전히 배제하고 옛날로 돌아가야 할까? 자연주의 출산의 장점을 살리고 필요하다면 현대의학의 도움도 받아서 산모와 아기에게 모두 안전하면서도 행복한 출산을 할 수는 없을까?
◇ 유도분만 해도 되나
산모나 의사나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유도분만에 관한 것이다. 유도분만에 대해서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 같다.
뱃속 아기가 주수에 비해 클 때라든지, 직장이나 남편의 일정 때문이라든지, 심지어 주치의 개인적인 일정까지도 고려해 유도분만이 행해질 때가 있다. 물론 옳지 않은 방법이지만, 아주 쉽게 이 유혹에 빠지게 된다.
출산은 산모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론 의사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뱃속 아기가 주도적으로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자연 진통이 어떻게 생기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지만, 유력한 가설 중에 하나는 아기의 뇌하수체 호르몬과 아기의 부신호르몬, 그리고 태반 호르몬 등 상호 작용에 의해 진통이 유발된다고 하는 것이다. 즉, 아기가 나오려고 진통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도를 통과할 때도 아기가 능동적으로 회전하면서 산도를 찾아서 나온다고 한다.
자연분만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조화롭게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유도분만의 경우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외부 약물에 의해 인위적으로 자궁 수축만을 유발해 분만을 시도하기 때문에 조화롭지 않아 실패할 확률이 높고, 여러 합병증의 확률도 높다. 예를 들어, 뱃속 태아가 주수보다 많이 커서 거대아(4.0kg 이상)가 되기 전에 미리 유도 분만한 경우와 거대아가 되더라도 자연 진통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 경우를 비교해 봤더니 자연진통을 기다린 경우가 자연분만 성공률도 높았고, 합병증도 적었다고 한다. 따라서 뱃속 태아가 크다고 유도분만을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유도분만이 불가피할 때도 있다. 임신 중독증과 같이 임신이 지속되면서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험해질 경우, 또 뱃속 아기가 더 이상 뱃속에서 지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 의학적 판단에 의해 불가피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유도분만은 특수한 경우 외에는 하지 말아야 한다.
◇ 굴욕 3종 세트(제모, 관장, 내진), 수액줄 등 꼭 해야 하나
그 동안 당연시 했던 것들인데, 자연주의 출산이 조명을 받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그러게... 꼭 해야 할까?’, ‘안하면 안 되나?’, ‘내가 산모라면?’이라고 자문해봤다. 하지만 본인의 결론은 ‘조금 불편해도 하는 편이 좋겠다’ 였다.
회음부 제모는 출산 시 불가피하게 생기는 회음부 상처의 깔끔한 봉합과 감염 예방을 위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관장의 경우 관장을 안 하면 아기가 나올 때 대변과 같이 나오게 돼 위생상 안 좋을 뿐 아니라 최대한 산도를 넓히기 위해서도 대변, 소변을 다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진은 분만 진행을 평가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분만 진행의 평가가 없다면 분만과정이 정상적인지 비정상적인지 판단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굴욕적인 의료행위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데, 간혹 내진교육의 목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입원하면 관행적으로 정맥라인을 잡게 되는데, 이것에 대한 거부감도 많은 것 같다. 처음부터 정맥라인을 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진행돼 분만에 임박하면 반드시 정맥라인을 잡아야 한다. 드물지만 출혈이 과다하면 혈압이 낮아지고 혈관이 수축하기 때문에 정맥라인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분만 후 출혈 예방을 위해서 정맥으로 약물을 투여하게 되는데, 이도 출혈 여부를 보고 나중에 하는 것 보다 미리 예방적으로 투여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분만 후 출혈량은 미리 예측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약물을 쓰면 그만큼 출혈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안전장치들 없이 분만에 임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해 보인다.
◇ 출산 시 회음절개 안하면 안되나
이것은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문제는 선택을 의사가 한다는 것이다. 산모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고, 의사가 판단해서 회음부 손상이 예상되면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산모가 결정하기도 힘든 부분이 있다. 출산 시 회음부 손상이 어느 정도일지 미리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기 머리가 나올 때 회음부의 팽창 정도라든지, 회음부 조직의 강도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간혹 찢어져도 좋으니 회음절개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 의사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만약 회음부 손상이 크면 복구하기도 힘들고, 치명적인 합병증(산도 손상에 의한 출혈, 항문이나 직장파열 등)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회음절개를 한다고 그런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확률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산모한테 시행하고 있다. 회음절개는 위에 언급한 장점 외에 분만 시 늘어진 질 후벽 근육층을 당겨서 봉합해주면 출산 후 질벽의 늘어짐도 어느 정도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 집에서 분만했던 임산부들의 회음부를 보면 회음절개를 안하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 무통분만 하는 게 좋은가, 안 하는 게 좋은가
산고의 통증을 느껴보지 않아서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지만, 많은 산모님들의 진통을 옆에서 봤다. 어떤 산모는 별로 힘들어 하지 않고, 쉽게 출산하기도 하고, 어떤 산모는 정말 통증 때문에 죽어도 못하겠다고 수술해달라 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그냥 수술해야 할까? 아니면 엄살일 수도 있으니 그냥 참으라고 해야 할까? 산고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숭고한 이념 때문에 엄마가 견뎌야 하는 운명일까?
또 어떤 임산부는 처음부터 무통시술을 해달라 한다. 주로 첫째를 낳을 때 지옥 같은 통증을 겪었던 경산모들이 요구한다. 사실 경산모들은 아주 빨리 진행해 무통시술이 거의 필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또 어떤 이는 선배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미리 겁먹고 그냥 무통시술을 원하기도 한다.
무통시술을 할지 말지 선택은 산모의 몫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전혀 필요 없고, 어떤 이는 꼭 필요하기도 하다. 다만, 진통을 겪기 전에 무통시술을 미리 받는 것은 반대한다. 무통시술은 적절한 타이밍에 시행해야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국 ACOG에서는 자궁경부가 4~5cm 열렸을 때 시술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 제왕절개수술은 언제, 어떨 때 해야 할까
사실 제왕절개수술은 산과분야에서 현대의학이 이룬 가장 혁명적인 성과다.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만약 제왕절개수술이 없다면 출산이란 과정은 너무 무섭고 위험할 것이다.
출산의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질식 자연분만으로 순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바램인 이 순산이 모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난산이 예상돼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이 선택의 기로에서 얼마나 정확하고, 적절한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인데, 불행하게도 이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의사는 없다. 진행단계별, 상황에 따른 의학적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의사 개인의 의학적, 경험적 판단에 따라 너무 다양할 수 있다. 또 중요한 것이 산모나 남편, 다른 보호자 등과의 관계에 의해서도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많은 경험을 하면서 나름의 원칙은 순리에 순응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기 머리가 보일 정도로 많이 진행이 됐는데, 더 이상 진행이 안되고 걸려 있다면 배를 눌러서라도, 흡입기를 써서라도 질식분만을 진행해야 할까? 아니면 바로 응급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할까?
배를 눌러보지도 않고, 흡입견출기(진공흡착기로 아기의 머리에 대고 외부에서 당겨서 분만하는 의료기구)를 한번도 사용해 보지도 않고, 바로 응급제왕절개수술을 한다면 이는 좀 소극적인 것이고, 반대로 계속해서 배를 누르면서, 흡입견출기를 반복해서 계속 사용해 두 시간 이상 시도한다면 이는 너무 과도하게 질식분만을 시도하는 것이다. 분만 2기(자궁문이 다 열리고 아기가 나올 때까지의 기간)가 2시간 이상 지속되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고, 흡입기를 3회 이상 반복 시도해도 안될 때는 수술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에 순응하는 것이 순리다.
자연 분만에 대한 절대적인 맹신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자연분만을 해야 아기가 똑똑하다든지, 좁은 산도를 헤쳐 나올 수 있어야 경쟁력이 있다든지 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도 있다. 그런 이들은 분만 진행과정이 정상적이지 않더라도 무조건 자연 분만을 고집한다. 심지어 자연분만으로 나오지 못하는 자식은 필요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언행을 하면서 제왕절개수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정말 순리를 거스르는 판단이고, 행동이다.
출산의 과정은 정말 쉽지 않은 어려운 과정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이기 때문에 산모뿐만 아니라 의사도 두려움 그 자체다. 15년 동안 분만 현장에 있었지만 아직도 분만실에 들어가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긴장의 진땀을 흘린다. 그래서 무사히 출산을 마치고 건강한 산모, 아기를 맞이하면 안도감과 함께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