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7시30분에 시작된 북한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교란이 5일 12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최초 교란 전파 발생 이후 전파교란과 중지를 반복했다. 발신원은 해주, 연안, 평강, 금강산, 개성 인근으로 파악됐다.
GPS는 항공과 교통뿐만 아니라 해양, 이동통신, 방송, 긴급구조, 우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된다. 하지만 신호가 2만200㎞ 상공에서 송신되기 때문에 지상 수신 전력이 미약하다. 태생적으로 전파교란에 취약하다. 전파교란 강도가 심해지면 자칫 인명과 산업에 커다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방어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적극 대응책이 필요하다.
◇북한 GPS 전파교란, 지금 왜?
북한은 해주, 평강, 금강산 인근에서 시작해 연안과 개성 등지로 교란원을 다양화하면서 GPS 전파교란 신호를 보냈다. 교란 발생 주파수는 상용 GPS가 쓰는 1575.42㎒, 군용 대역인 1227.6㎒다. 교란신호 세기는 -90∼-105㏈m에서 유지되고 있다. ㏈m은 밀리와트(mW) 기준으로 전력(출력) 값을 나타낸 단위, ㏈는 이를 로그(log)로 나타낸 형태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교란 전파로 영향을 받는 곳은 인천과 경기·강원도 일부 지역이다. 5일 12시 현재까지 항공기 962대, 선박 694척, 기지국 1786곳에 GPS 교란신호가 유입됐지만 특별한 피해는 없는 상태다. 미래부는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주의` 단계를 유지하며 상황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GPS 전파교란을 발생시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북한이 GPS 전파교란을 발생시킨 목적은 최근 남북관계의 긴장 상황 때문으로 보고 있다. 2012년 이후 4년 만에 대통령 해외 순방 도중에 GPS 전파교란을 실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무력시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학계와 전파 관련 업계는 북한이 GPS 전파교란의 기술력과 영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GPS 전파교란은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산악 지형이 많기 때문에 약한 출력에서는 인천과 경기·강원도 일부에서만 영향을 받는다. 즉 출력에 따라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와 영향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위치를 바꿔 가며 교란 전파를 발생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GPS 전파교란은 의도한 전자파 장애
GPS 전파교란은 `전자파 장애(EMI:Electromagnetic Interference)`의 일종이다. EMI는 전자파가 다른 기기의 기능에 장애를 주는 것을 뜻한다. 원인이 자연(태양, 우주, 행성, 번개, 대기) 현상에 의한 것도 있지만 통신이나 전력산업, 각종 기기류에 의한 인공물에 따른 것도 있다.
원리는 `간섭`이다. 같은 주파수 대역에 다른 신호가 유입되면 전파는 합성 또는 상쇄되면서 혼란을 일으킨다. EMI가 발생하면 기기는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다. 출력이 클수록 영향력도 커진다. EMI를 의도해서 사용하면 방해 신호를 의미하는 `재밍(jamming)`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간섭으로 분류된다.
GPS 전파교란은 재밍을 활용해 수신기로 GPS 신호를 수신하거나 추적할 수 없게 한다. 단순한 전파 방해를 넘어 GPS 신호와 동일한 가짜 신호를 생성해 잘못된 위치와 시각 정보를 산출토록 하는 `스마트 재밍(스푸핑)`도 등장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과 전혀 다른 곳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도한 재밍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피해를 늘릴 수 있다.
GPS는 지상 수신 전력이 매우 약한 데다 단일 주파수, 잘 알려진 신호 구조로 전파교란에 취약하다. 재밍 기법이 잘 알려져 있고 손쉽게 장비를 구해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 세계 군 무기체계가 GPS에 의존하고 있고 GPS 사용 범위도 광범위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능동적 대응책 마련 필요
북한은 2010년 8월 23∼25일 김포와 파주 등 수도권 서북부 지역에서 GPS 전파교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2G와 와이브로 등 일부 이동통신 기지국 품질이 저하됐고, 몇몇 항공기가 GPS 신호 수신에 불편을 겪었다. 2011년 3월 4∼14일, 2012년 4월 28일∼5월 13일에도 GPS 전파교란이 발생했다.
GPS 전파교란을 막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제약이 따른다는 게 학계와 전파 전문가들의 얘기다. 재밍 신호와 반대되는 신호로 전파를 상쇄하는 `항 재밍`이 있지만 이는 국제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항공과 군사 등 일부 용도로만 사용된다. 신호를 100% 차단하는 것도 아니다.
문성원 시스다인 대표는 “항 재밍은 능동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국제법상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모르지만 우리가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잘 알려진 주파수 대역을 바꿔 비밀 주파수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GPS 체계가 미국 위성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시시스템을 구축하고 상황을 전파하거나 외교 채널을 통해 북한에 경고를 하는 것 외에는 능동적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GPS가 전파교란을 받더라도 위치와 시각 정보 제공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는 대체 항법 기술이 요구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신기에 항 재밍 기능을 높이고 위성 송신 신호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GPS 교란뿐만 아니라 강력한 전자기파로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EMP 폭탄 보유 가능성도 있어 전자전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도 요구된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