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금융산업의 창조적 분해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간 바둑 중계를 보면서 단순히 인간과 인공지능(AI) 기술의 흥미로운 대결 정도로 가볍게 넘긴 사람은 많지 않다.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예상을 뛰어넘는 AI의 데이터 처리 능력과 뛰어난 사고력에 핀테크로 대변되는 다가올 금융시장의 변혁이 한층 가속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금융산업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현재의 `믿음`으로 확대 재생산 또는 중개해 자원을 효율 높게 배분하는 산업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어서 오히려 믿기 힘들고, 이에 따라 믿도록 하기 위해 자격 요건을 엄밀히 따져서 `허가`한다. 이와 더불어 국가가 일정 부분 품질을 보장해 주는 예금자보호제도를 운영한다. 소비자에게 금융 기업 스스로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 주도록 하는 각종 공시제도와 신용평가, 회계감사 제도 등도 운영하고 있다. 금융 기관 역시 `믿음`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며 발전했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은 두 가지 요인으로 근본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첫째가 2011년에 촉발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에서 보듯이 기존의 금융기관에 대한 적대감이다. 한 외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브랜드라고 대답한 10개 가운데 4개가 금융 분야다. 2010년 기준 소매금융 이익의 36%를 차지하는 젊은 잠재 고객의 비중이 2030년에는 약 70%를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더불어 이들 응답자 가운데 4분의 3이 현재 은행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존의 은행 채널이 아닌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팔 등에서 제공 받기를 원한다. 금융업 종사자에게는 충격이다.

둘째 요인은 모바일 보급과 기능 확대에 맞물린 핀테크의 급성장이다.

그동안 금융산업은 정보통신기술(ICT)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은행은 온라인화로 지점을 확대하고 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으로 거래비용을 절감했다. 증권사는 점포망 확대 없이도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거래 폭증을 이뤄냈다. 핀테크를 단순히 전자금융의 진화된 모습으로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금융의 비약 발전에 훌륭한 조력자로 기능해 온 ICT는 이제 핀테크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금융서비스 전달체계를 와해시키고 금융시장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파괴적 혁신을 예고했다.

[ET단상]금융산업의 창조적 분해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이 “147년 전통의 골드만삭스를 `금융기업`이 아닌 `기술기업`으로 재정의한다”며 파괴적 혁신을 선언한 것도 같은 이유다.

어제까지 금융산업이 금융회사와 금융서비스를 동일시하는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다르다.

은행의 전통 영역인 예금·대출·결제·송금 등은 핀테크 기업이 만들어 내는 송금 애플리케이션(앱)과 개인간전자상거래(P2P) 대출서비스, 증권사의 유가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크라우드 펀딩 등 온라인 금융플랫폼에서 각각 개별 서비스로 제공되면서 금융회사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있다.

개인 모바일의 보급과 기능 확대로 고객에 대한 다양한 정보의 수집, 가공, 분석, 활용에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핀테크의 핵심이다.

금융이란 정보의 비대칭성을 기반으로 신용을 창출하고 관리하는 산업이다. 대규모 시스템과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분석 및 전망한다. 투자 대상 기업 또는 개인의 재무 상태를 들여다보고 평가해 신용 가치로 환산,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지원해 왔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활용해 신용을 평가하고 가치화해 온 대출심사, 자산운용, 보험인수·심사 등 업무는 점차 빅데이터와 AI에 내주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미 일선에서 고객을 상대하고 있다. 구글은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 금융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17세기 중반에 스웨덴 스톡홀름 중앙은행이 최초로 종이화폐를 발행하면서 시작된 전통의 화폐 개념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등 물리적 카드를 거쳐 생채 인식,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과 연계해 소프트웨어(SW)로 대체되고 있다.

금융기관은 과거의 독점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만의 상품과 금융 플랫폼을 서비스 전달자인 핀테크 기업과 효율을 공유하기 위한 금융산업의 창조적 분해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가는 곳을 사전에 어디로만 가라고 지정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가지 말아야 할 곳만 결정해 주고 여기에만 행정력을 집중할 때 창의력이 생기고 발전할 수 있다.

김홍일 우체국금융개발원장 hongilkim@posi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