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정보화 시장에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공공정보화 시장 공략에 집중한 중견 정보기술(IT)업체의 지난해 실적을 놓고 한 얘기다. 매출은 크게 늘었지만 손실 폭이 크다. 사업을 수주할수록 적자가 커진다.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 결론은 예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사업예산을 책정해 기획재정부에 신청한다. 기재부는 타당성 등을 검토해 예산을 편성한다. 통상 신청한 예산에서 10~20% 삭감된다. 사업 발주기관은 예가(預價)를 정한다. 예가는 기재부로부터 받은 예산의 95%로 결정된다. 예가에 90%인 추정가격도 정한다.
금액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기관이 사업 예산 100억원을 신청하고 기재부는 최대 90억원을 배정한다. 발주기관은 예가를 85억원5000만원으로 정한다. 추정가격은 76억9500만원이다. 이미 초기 필요 예산에서 23억500만원이 줄어 발주된다.
수행업체 계약금액은 더욱 낮아진다. 통상 가격입찰제로 추정가격에서 80~90%로 계약금액이 결정된다. 최대 69억2550만원, 최저 61억5600만원이다. 수주업체는 30억원 이상 부족한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 수주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과업 변경 등으로 부족한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예가 제도 폐지다. 기재부로부터 받은 예산을 그대로 사업 예산으로 배정한다. 예가는 과거 잘못된 공무원 예산 절감 노력의 산물이다. 중소 사업자에게 고통을 주는 정부의 예산 절감은 의미가 없다.
또 하나는 가격을 사업자 선정 기준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기술만으로 100% 평가를 한다. 가격은 정해진 사업예산을 넘지 않도록 적격 기준으로만 활용한다. 정부는 기술과 가격 입찰 비율을 9대 1로 조정했다. 여전히 10% 비중밖에 안 되는 가격 기준이 사업 수주를 결정한다. 일부 기관은 2단계 최저가, 적격심사 등을 적용한다. 저가 발주와 저가 수주를 막는 `유이한` 방법이다.
신혜권 SW/IT서비스 전문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