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은 한 인터뷰 기사에서 디자인에는 스몰 디자인과 빅 디자인이 있다고 했다. 스몰 디자인은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 빅 디자인은 `무엇을` 디자인 하느냐로 각각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디자인도 `어떻게`를 넘어서 `무엇을`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도 `빅퀘스쳔`이라는 책을 썼다. 인생에 있어서의 31가지 큰 질문들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뇌과학에서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주로 질문을 던지기만 하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이제까지는 `어떻게`에 주력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무엇`에 주목하게 됐다. 디지털 혁명 이전에는 `무엇`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앞서가는 선진 기업을 따라가서 추월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 영역에서 따라잡을 목표가 없어졌다. 뒤에서는 우리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중국, 인도 업체들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어떻게`가 아닌 `무엇`에 대해 집중할 때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정해지면 몸은 힘들지만 머리가 아프지는 않다. 목표가 명확하면 갈등과 고민이 없다. 그저 열심히 `어떻게`만 고민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새벽 별 보고 출근해서 심야에 퇴근했던 것이다. 그동안 이것을 왜 하지, 이것 다음에는 `무엇을` 하지에 대해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빠르게 하지` `어떻게 싸게 하지` `어떻게 많이 만들지`에 대해서만 늘 고민해 왔다.
`어떻게`에서 `무엇으로` 전환하려면 대답보다는 질문에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수많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실수하지 않는, 후회하지 않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대답을 잘하려면 과거의 많은 사례를 모아야 한다. 정보와 지식이 많이 쌓일수록 바른 대답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무엇을` 시대로 넘어가면 이전의 경험들이 새로운 `무엇`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확언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무엇`에 맞는 새로운 원칙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찾아내는 행위는 근원을 향한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컴퓨터는 질문하지 못한다.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할 뿐이다. 미리 입력된 데이터와 법칙을 바탕으로 연산을 통해 빠르게 대답해 줄 뿐이다. 컴퓨터는 묻고 대답하고, 묻고 대답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래서 지금 잘한다고 하는 것들이 전부 상대가 있는 것이다. 퀴즈든 체스든 바둑이든 게임이든 서로 주고받는 것은 잘한다. `무엇을`이 이미 정해져 있으면 `어떻게`는 인간보다 월등하게 잘한다.
손자들 말 배워 가는 것을 보면 `무엇`부터 배운다. `어떻게`는 한참 뒤에 배운다. 그리고 `무엇을` 배우고 난 뒤 곧바로 질문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학교에 들어가면 질문보다는 대답을 주로 배운다. 시험을 보는 것도 결국 대답 잘하는 훈련일 뿐이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은 다 사라지고 외워서 대답해야 할, 생존을 위한 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평생을 질문보다는 대답을 하면서 산다.
지금 알파고 때문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너무 많은 지식을 뿜어내고 있다. 이제 많은 사람이 그래픽처리장치(GPU), 몬테카를로 방식, 기존 직업의 소멸, 강인공지능에 의한 인류 멸망에 대해 자주 듣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공지능 관련 논의들이 정말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까? 초등학교 학생에게 “어느 회사 취직할래” 하고 물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앞서고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무력감에 빠져든다.
인공지능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이때 우리는 인공지능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 고차원적 담론을 즐기는 것이 맞는 건가? 지금 당장 우리가 관심 가지고 집중해야 하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결과적으로 우리는 알파고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물리적인 기계가 생물학적 인간을 절대 못 따라 오는 분야와 능력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가 아닌 `무엇`을 생각하는 능력이고, `무엇`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능력이다. 질문하는 능력은 경계를 뛰어넘어서, 한계를 뛰어넘어서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려는 인간적인 노력이다.
앞으로도 각 분야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경우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어떻게`로는 인간은 절대 컴퓨터를 못 이긴다. 컴퓨터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컴퓨터가 생각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서로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질문하는 훈련과 질문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알파고를 `어떻게`의 관점에서 보고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 가지고는 알파고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알파고 충격에서 헤어나는 방법은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에 집중하는 사고의 전환과 대답이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