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인터뷰] ‘커터’ 속 소시오패스 최태준, 센 캐릭터에 빠지다

출처:/ 전자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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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작품마다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는 것은 배우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관객에게도 큰 재미를 준다. 물론 이런 연기는 모험이기도 하다. 배우가 캐릭터 하나도 구축하기 힘든 상황에서 섣불리 다른 캐릭터를 만들다보면 대중들에게 오히려 혼동만 주기 때문이다.

배우 최태준은 그런 면에서 성공적인 과정을 걷고 있다.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이하 ‘부탁해요’) ‘엄마의 정원’‘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선보였던 씩씩하고 사랑스러웠던 이미지를 벗고, 영화 ‘커터’에서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면서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커터’는 한 고등학생이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그린 청소년 범죄 드라마로, 최태준은 학교 안에서 유명인사지만 유일하게 윤재(김시후 분)만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세준 역을 맡았다.

세준은 묘한 캐릭터다. 학교에서 아이돌 급 인기를 가지고 있지만 학우들 위에서 군림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윤재가 전학 온 첫날부터 그를 챙기면서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세준의 우정은 너무나 맹목적이기에 어른의 마음으로 본다면 조금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대본을 처음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성인이 된 후 친구를 만나도 이왕이면 영양가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잖아요.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그런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냥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났죠. 처음에는 세준이가 윤재에게 뭘 바라고 다 해주고 싶어 할까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미 제가 이해타산 적으로 살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괜히 집에 데려와서 놀고 싶기도 했던 학창시절들을 떠올려 보니까 순차적으로 답이 나왔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우리 모두 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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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준의 친절함은 윤재에게 한정되어 있다. 가족에게까지 냉정한 그는 소시오패스 성향도 보인다. 최근 ‘부탁해요’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웃는 사랑스런 막내의 모습을 선보인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긴다.

“‘부탁해요’에서는 너무 착해서 답답했던 역할이었어요. 착한 역할이 싫은 것이 아니라 요새 악역들이 대세고, 여러 가지 면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역할이 탐이 났죠. 세준이는 나름대로 소시오패스고, 또래에게 우월함도 느끼는 인물이에요. 다음엔 세준이보다 더 센 역할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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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으로 데뷔해 주로 드라마에서 활동했던 최태준의 스크린 나들이는 오랜만이다. 그동안 거의 단역으로 출연했던 최태준에게 첫 주연이기에 의미가 있다. 작품에 출연하기로 하고 막상 돌입한 촬영은 쉽지 않았다. 영화 제의를 받았던 시기가 ‘부탁해요’촬영 시기랑 겹쳤기 때문에 결국 양쪽을 오가며 연기해 체력적인 어려움이 컸던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만족감은 컸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 시기와 겹쳐서 많이 고민하다가 감독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찍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밌게 찍었고, 욕심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커터’는 청소년의 성범죄 괴담을 소재로 다루고 있고, 끔찍한 결말로 흘러간다. 최태준 역시 성범죄 사건들이 현실 세계에서도 벌어진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으며,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리는 세 명의 중심인물에게 연민을 느꼈다.

“고등학생들에게 성범죄가 노출돼 있다는 것도 충격적인데, 현실은 이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더 충격적인 것 같아요. 다만 대본을 보면서 좋았던 점은 한 인물뿐만 아니라 세 인물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한 명이 미워 보이거나 ‘얘만 아니었어도’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멍했어요. 세준이도, 윤재도, 세준이를 좋아하는 은영(문가영 분)이도 다 불쌍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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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준은 오랜만에 실제 자신보다 어린 역할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앞서 최태준은 22살에 드라마 ‘못난이 주의보’에서는 검사를 맡았고, 23살에 ‘엄마의 정원’에서 이혼을 걱정했었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연기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점점 회춘하는 거 같아요.(웃음) 22살에 검사를 했고, 23살에는 이혼과 불임을 고민했고, 25살에 교복을 입었어요. 어떻게 하다보니 작년부터 올해까지 1년 동안 고등학생부터 평범한 가정의 막내 역할까지 해봤어요. 얼마 후엔 조선시대에서 살게 돼요.(드라마 ‘옥중화’에 출연한다)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자신이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는 그런 고민 없이 배우로서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한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을 알고 있는 그는 아역으로 잠깐 활동하다 오랫동안 쉬었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는 수없는 좌절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일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며, 앞으로도 쉬지 않고 대중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일에 대한 욕심이 있는 편인데, 잘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하는 것을 좋아해요. 평소에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쉬는 날에도 밖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죠. 쉬면 불안하고, 결정되지 않은 상황을 좋아하지 않아요. 다행히 지금은 다음 작품을 정해놔서 요즘엔 고민이 없어요.(웃음) 5월부터는 ‘옥중화’로 찾아뵐게요.”

이주희 기자 lee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