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바이오 산업이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구병원 육성이 핵심이다. 정부도 연구중심병원 지정 등 정책을 시행했다. 병원연구는 초기 단계다. 병원이 민간 기업과 협력, 연구 진행 및 사업화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많다. 각국이 의료바이오 산업 육성에 두 팔을 걷어붙이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제자리걸음이다. 의료 후진국 중국에도 뒤처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2013년 국내 최초로 10개 연구중심병원을 선정했다. 가천대길병원, 고려대안암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등이다. 산·학·연·병 연계로 개방형 융합연구 인프라를 구축, 글로벌 수준의 보건의료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지정 후 3년이 지났다.
◇정부 연구중심병원 지원 `속빈 강정`
시기상으로 한국형 연구중심병원은 도입기를 지나 성장기를 맞이했다. 지속 가능한 연구지원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기술사업화 기반 조성을 갖추는 시점이다. 의료현장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지난 3년 동안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중심병원은 6곳 425억원 수준이다. 병원별로는 최대 100억원에서 최소 25억원을 받았다. 4개 병원은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연구중심병원 사업 예산으로 총 2조3933억원을 편성했다. 정부가 9763억원, 의료기관이 1조4170억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단일 사업으로 복지부의 1조원 가까운 예산 지원은 처음이다.
2013년 연구중심병원 지정 이후 예산 집행은 계획과 정반대로 이뤄졌다. 2014년 100억원, 2015년 170억원을 각각 집행했다. 올해는 262억5000만원을 확보한 수준이다. 일부 연구중심병원은 올해도 예산을 지원받지 못한다. 병원 관계자는 “정부 연구중심병원 육성 정책은 `속빈 강정` 수준”이라면서 “지금은 정부 지원을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연구중심병원 지정으로 불필요한 병원 간 경쟁만 일으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병원 연구원장은 “여러 대학병원이 협력해 의료바이오 연구를 진행하는데 연구중심병원 지정 경쟁으로 오히려 개별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연구처장은 “국가 산업 측면에서 의료연구분야 지정이 필요하지만 병원을 지정, 무의미한 경쟁만 한다”고 꼬집었다.
◇각종 규제가 연구병원 걸림돌
각종 규제도 걸림돌이다. 병원들은 기초·임상연구 기반으로 사업화해야 한다. 민간기업 자금 유치 등 협력이 절실하다. 현 의료법으로는 이러한 연구 사업화가 어렵다. 영리자회사 설립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허용되면 대학병원과 국·공립병원이 외부기관에서 투자를 받아 연구를 진행한다.
대부분 병원들이 임상·기초연구를 진행했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사업화까지 진행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일부 민간 기업이 참여하고 있어도 대규모 자금 유치에는 한계가 있다. 한 대학병원 연구처장은 “의료바이오 산업은 병원·대학·출연연·기업 등이 융합돼야 가치를 만든다”면서 “대규모 자금이 유치돼야 이스라엘, 스위스 같은 대표 의료바이오 기업이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 불허도 장애 요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등 대형 병원이 원격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관련 규제에 막혀 사업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격 헬스케어 서비스가 가능하면 만성질환자 건강관리가 효율화된다. 환자도 병원도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중국 등은 원격 진료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한 대형 병원장은 “세계 수준의 의료 및 IT 실력을 갖추고도 규제 때문에 의료 후진국인 중국에도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을 내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등 일부 병원은 정부 연구중심병원 정책과 별개로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유전체 분석을 대표 연구 분야로 내세웠다. 박경찬 분당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궁극으로는 병원 내 연구원 조직 자체가 무의미해져야 한다”면서 “산·학 협력 클러스터 중심으로 의료바이오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성모병원도 최근 연구중심병원으로 전환해 혈액내과, 성형외과 등 6개 센터를 중점연구센터로 선정했다.
신혜권 SW/IT서비스 전문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