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기업이 중견그룹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인수합병(M&A)이나 소재·부품 분야로 계열사를 확장하며 규모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국내 디스플레이·반도체 산업 역사 40여년 만에 글로벌 장비기업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규모로 발돋움하는 모습이다.
원익그룹, 케이씨텍, AP시스템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에서 고르게 성장한 성과를 바탕으로 유관 산업 분야에 진출하며 영역을 키웠다. 단일 중견 장비기업을 넘어 인수합병, 합작법인 설립, 지분 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품·소재 시장까지 진출했다.원익그룹은 국내 장비기업 중 가장 많은 계열사를 보유하며 기반을 탄탄히 다진 것으로 꼽힌다. 반도체, 전자부품, 무역·유통, 건설·레저, 투자 등의 부문에 걸쳐 총 11개 계열사를 뒀다.반도체 부문 계열은 원익IPS(장비), 원익큐엔씨(쿼츠·세라믹), 원익머트리얼즈(특수가스), 테라세미콘(장비)의 4개 회사를 뒀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총 1조864억원 규모다.이 외에 다양한 분야 압력센서와 전자·통신용 부품을 제조하는 위닉스, 케미칼·폴리머 등 화학·전자재료와 IT·건축자재 등을 유통하는 원익큐브, 의료용 기기를 유통하는 원익(주)으로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노렸다. 반도체 부문 계열사 외에 이들 유관 분야 계열 매출까지 합치면 약 1조3000억원대 규모다.원익IPS는 전략적 인수합병으로 성공 사례를 만든 국내 대표적 장비기업이다. 지난 1991년 아토로 출발한 후 2010년 아이피에스를 흡수 합병하면서 원익IPS라는 이름으로 국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삼성전자 장비 자회사인 세메스에 이어 국내 장비기업 2위로 성장했다.지난 2014년 1월 테라세미콘을 인수한 것도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열처리 기술에 강점을 가진 테라세미콘을 인수해 기존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 기술 영역을 확대했다. 테라세미콘은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 시장에서 주목받는 장비 기업으로 성장했다.
케이씨텍도 일본과 합작법인을 세우는 등 기존 장비사업 외에 소재, 부품으로 영역을 확대해 총 8개 계열사를 보유한 중견그룹으로 면모를 갖췄다. 케이씨텍은 디스플레이·반도체용 전공정 장비와 소모성 재료를 생산·판매한다. 케이씨텍 그룹의 지난해 총 매출은 약 7066억원 규모다.주요 자회사인 케이씨이앤씨는 배관·클린룸·플랜티 설비 시공을 전문으로 하며 2012년 케이씨건설을 흡수합병했다. 2011년에는 투자자문을 담당하는 케이씨아이앤에스를 설립했다.일본 기업과 공동 투자한 2개 법인도 지난해 실적이 상승해 호재를 맞았다. 일본 카시야마 인더스트리와 지난 2006년 계약을 맺고 지분 40%를 보유해 설립한 진공펌프 기업 케이케이테크는 지난해 매출 578억원, 영업이익 25억원 규모로 성장했다.티씨케이는 일본 도카이카본과 케이씨텍이 각각 지분 35.4%, 28.3%를 보유한 반도체·태양전지·LED용 부품 제조사다. 국내 처음으로 가공-고순화-CVD SiC 코팅 공정을 일괄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고 고순도 흑연 등을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619억원, 영업이익 160억원을 달성했다.이 외에 국내외 수출입 업무와 특수가스 제조·판매업을 하는 케이씨티앤에스(지난해 매출 208억원), 정보통신 관련 제품을 개발하는 디오텔(41억원) 등을 보유했다.지난해와 올해 OLED 설비투자 최대 수혜 기업으로 눈길을 끈 AP시스템도 전략적 인수합병으로 성장한 대표 장비기업 중 하나다. 1994년 코닉시스템으로 출발한 뒤 2003년 앤콤정보시스템과 합병해 네트워크사업에 진출했다. 2008년에는 아태위성산업과 합병해 위성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2009년 OLED용 레이저결정화장비를 개발한 후 지속적으로 기술력을 높이며 신시장 진출에 대비했다.
AP시스템은 핵심 역량인 장비기업 경쟁력을 높여 중견 그룹사로 도약하기 위해 검사장비 기업 디이엔티를 지난 2014년 인수하고 덩치를 키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레이저결정화 장비와 레이저리프트오프(LLO) 장비로 OLED 투자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만큼 새로운 디스플레이·반도체 장비 분야로 경쟁력을 확대할 방침이다.
AP시스템 역시 다양한 분야 기업을 계열사로 보유했다. 반도체 장비부품 제조와 정밀세정을 주로 하는 제니스월드(55.4%), 소프트웨어를 개발·판매하는 코닉오토메이션(60%), 반도체 장비기업 넥스틴(25.2%) 지분을 보유했다.
지난해 10월 주식을 취득한 넥스틴의 경우 반도체 검사장비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한 신생 회사로 업계 기대감이 큰 회사다.
AP시스템과 계열사 주요 매출은 총 3618억원이다. 아직 전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경쟁력 높은 기술을 확보해 향후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크다. 디이엔티와 넥스틴의 향후 행보도 눈길을 끈다.
업계에서는 주요 장비기업이 디스플레이·반도체 산업 내 여러 분야로 진출하며 규모를 키우는 시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장비기업과 나란히 경쟁해야 살아남는 만큼 전문성과 사업 시너지를 높이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미래 기술 연구-신제품 개발-신시장 개척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 경쟁력 있는 기업을 먼저 발굴해 지분투자, 인수합병 등을 하려는 사례가 많다”며 “과거 국내 장비기업은 인수합병이나 투자에 인색했지만 기술 난이도가 높아지고 산업 변화가 빨라진 만큼 체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갖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국내 장비기업 현황 (자료: 전자공시시스템)>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