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원자력과 장독대

[ET단상]원자력과 장독대

장년이 돼도 고향을 찾는 그리움은 여전하다. 아니, 해가 갈수록 더하다.

고향에는 따뜻한 공기가 있어서 좋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함께 놀던 동무들도 눈에 선하다. 어릴 적에 뛰놀던 동산이 왠지 작아 보이지만 그런대로 추억에 잠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유독 어머니는 집 한 귀퉁이에 자리한 장독대를 무척이나 아끼셨다. 볕이 좋으면 장독을 닦는데 하루 온종일 시간을 보내시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그리우면 가끔 장독대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난 장독대는 우리 집의 자랑스러운 아이콘이었다.

요즘엔 보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엔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었다. 지금처럼 먹거리가 새롭고 풍성하지 않던 시절에 장독대는 다소 부족하긴 해도 그런대로 풍성함의 여유를 갖게 해 주곤 했다.

물론 지금은 흔하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음식을 발효시키고 보관하기 위한 조상들 지혜의 결정체였다. 장은 묵을수록 맛있다고들 한다. 이쯤 되면 장독대는 맛과 건강을 동시에 보증하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이다.

거기에 어머니 정성까지 곁들여지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애잔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빛나는 장독대를 바라보며 한 구성원으로 몸담고 있는 대한민국 원자력의 어제와 내일을 생각한다.

이론은 있을 수 있겠으나 국가 차원에서 보듬고 가꾸기 시작한 우리나라 현대과학의 시작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꾸려진 1959년이란 주장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반세기를 훨씬 넘은 시간 동안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원자력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원자력발전소와 연구용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의 제조 기술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중반에 가동 예정인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에서도 입증했듯이 연구로 건설 및 운영도 우리나라보다 앞선 나라는 찾기 어렵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에 건설하고 있는 원전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운영은 이미 세계 1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 예정인 스마트(SMART) 소형 원전은 앞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할 만한 대표 원자력 먹거리다. 머지않아 초고속으로 성장할 세계 소형원전 시장을 석권할 `대한민국 원자력호`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한국 원자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으로 발전하기까지는 정부, 국민, 연구 분야 종사자들의 삼위일체가 가장 큰 동력이었다.

마치 어머니가 장독대를 어루만지듯 정부는 단돈 10달러가 아쉽던 1950~1960년대에 원자력을 도입하고 안전하고 경제성 높은 선진 원자력 기술 개발에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발전적 비판을 아끼지 않은 국민들은 늘 원자력의 중심이었고, 당연히 앞으로도 원자력의 주인공이다.

정부와 국민이 만든 장독대를 현장의 원자력 전문가들은 장독 하나하나에 연구로, 핵연료, 발전소 설계 등 소중한 기술들을 담아 왔다. 이제 그 노력이 원자력 세계 시장인 소형 원자로, 대형 원자로, 연구용 원자로 분야 석권이라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지난 원자력의 반세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멋진 반세기를 희망한다.

[ET단상]원자력과 장독대

“한창때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그 새벽은 다시 오지 않는다. 때가 되면 마땅히 스스로 공부에 힘써야 하며,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시간의 중요성을 설파한 시객 도연명의 말은 항상 옳았다.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 jkkim1@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