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봄날을 기대하는 마음에 노란 먼지가 불청객처럼 내려앉았다. 형형색색의 꽃 천지를 이뤄야 할 봄날이 극성을 떠는 미세먼지로 희뿌옇게 변한 모습에 사람들은 걱정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눈으로 측정할 수 없는 작은 먼지 입자가 당장의 호흡을 막지는 않겠지만 몸 속에 침투한 먼지가 무슨 병을 어떻게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께름칙함`은 이런 이유로 그런 결과가 올 것이라는 인과(因果)의 정확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두려움`은 인과관계를 모르니 앞으로 발생할 일을 통제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 미세먼지처럼 보이지 않게 우리 삶에 스며든 정보통신기술(ICT)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알파고처럼 기술이 자가 발전하는 단계에 이르면 `인류가 의도한 목표`와 전혀 다르게 변이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경고는 과학기술 발전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에 힘을 싣는다.
불과 30년 후인 2045년이면 컴퓨터 연산 능력이 인간 지능을 완전히 초월할 거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과연 그때에도 인간은 여전히 기술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로봇의 그네타기 실험 영상에서 그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험자가 하나의 로봇에는 그네타기 알고리즘을 입력한 반면에 다른 로봇에는 그네타기를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AI)하도록 유전적 알고리즘을 설정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타는 법을 가르쳐 준 로봇보다 AI를 장착한 로봇이 더 잘 타며, 타는 모습도 사람이 쓰지 않은 방식을 스스로 터득해 사용했다.
바둑에서 이기기 위해 태어난 기계 알파고(碁)에서 보았듯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기계의 학습능력 진화로 인해 더 유능해지는 기계에 빠르게 밀려나는 상황을 맞게 될 것 같다. 정말 이 같은 디스토피아적 전망처럼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통제 불가능한 것일까.
분명 기술 진화의 끝은 예측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영상 속 로봇은 중지 명령을 받지 않는다면 여전히 `인간이 설정한 대로` 그네를 타고 있을 것이다. 물론 로봇이 예상보다 그네를 높고 멀리 굴러서 행인과 부딪칠 위험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그네타기와 인간 보호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진폭의 한계를 정해 주면 해결될 문제다. 중요한 것은 AI 진화의 한계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인간이 AI 개발의 목적과 수준, 윤리에 대해 자의에 따르는 통제 노력을 경주하는 일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사물인터넷(IoT), AI, 로봇, 가상현실(VR) 등 진화될 신기술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의 역량을 넘어선 기술 발전은 안정(安定)된 삶과 안전(安全)한 삶의 조화 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유발하게 될 것이다. 인본 기술에 대한 사회 합의와 지키려는 노력 없이는 파국 상황의 도래를 막을 수 없어 보인다. 기술 발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인본(人本)`의 의미가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인류를 위한 인본 기술의 가치를 과학기술 발전의 최우선 덕목으로 삼는다`는 합의와 실천헌장을 마련하기 위한 모색이 필요하다. 알파고의 흥분과 충격은 이제 가라앉히고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의 인본 기술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 나갈지 조금은 차분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다.
안전한 미래를 위해 정보보호 내재화나 융합보안 같은 기술상의 안전장치와 함께 `기술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안전 장치인 `인간 중심 DNA`를 심어 나가야 한다. 인간을 위한 ICT 시대에 역설적으로 결핍돼 가는 휴머니즘의 가치를 공유하고 균형을 맞추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질척이는 봄비가 반가운 것은 황사와 먼지를 거둬 내고 새로운 계절의 파릇한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학과 기술이 밝고 맑은 30년, 100년 후의 미래를 꽃피워 내도록 인본의 스프링클러를 틀어 주는 일이다.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 ksbaik@ki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