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12월 벨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등이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이래 지난 반세기 동안 실리콘반도체 칩의 집적도는 `무어 법칙`을 따라 매년 급격히 증가해 왔다.
스마트폰의 핵심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는 이미 20억개가 넘는 트랜지스터가 사용된다.
진화하는 반도체칩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에서는 매년 대표 주제를 발표하는데 2012년부터 지금까지 `실리콘 시스템`이라는 말을 첫머리에 내세운다. 실리콘반도체가 단순한 소자 차원을 떠나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정보의 저장, 가공, 처리, 전송 등 시스템 운용에 필요한 제반 기능이 총화를 이루는 시스템반도체는 정보화 사회를 굳건히 견인해 왔다.
지난해 기준으로 약 2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3~4%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시스템반도체는 인공지능(AI) 등의 소프트웨어(SW) 발전과 더불어 급속히 지능화돼 SW와 더욱 강력하게 융합된 `지능형반도체`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풍부한 고급 설계 인력, 자본, 기술을 바탕으로 절대강자 지위를 굳건히 지켜 오고 있다. 최근에는 스타트업 및 기존의 팹리스 업체에 집중된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지능형 반도체 기술 및 시장 주도권을 계속 유지해 가고 있다.
중국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반도체 분야에 전방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지난 2011년 국무원이 발표한 SW 산업 및 정보기술(IC) 산업 조세우대 방안을 담은 `SW 산업 및 IC산업 발전 격려` 정책이다.
강력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의 M&A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지능형 반도체와 같은 미래 융합 첨단산업기술 분야에까지 적극 투자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시스템반도체에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대외 환경이라는 강력한 태풍에 산업 기반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능형 반도체의 전략적 육성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2014년 4월 지능형 반도체를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4대 기반 산업의 하나로 선정했다. 현재 범정부 차원의 장기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4년 전부터 SW-시스템 온 칩(SoC) 융합을 위한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SW-SoC 플랫폼 기반 기술 구축과 지능형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ETRI가 자체 개발한 고성능 임베디드 프로세서 `알데바란`을 산업체에 확대, 보급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방한 신개념 반도체인 `뉴로모픽 프로세서`의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뉴로모픽 프로세서`는 뇌의 신경세포(뉴런)와 시냅스 역할을 뉴로모픽 칩의 `코어`와 `메모리` 간 다중 연산으로 처리하며, 여기에 지능화된 반도체 기능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현재의 대규모 클라우드 시스템을 대체할 것으로 예측된다. `내 손 안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구현되는 것이다.
기존의 컴퓨터가 명령어에 의한 연산이라면 뉴로모픽 칩은 인간의 학습 과정을 모방하는 방식이다. 코어 속의 전자 회로가 알아서 수치 조절을 하기 때문에 연산량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전력 소모가 매우 낮은 이유다.
AI를 위한 SW를 가동하기 위해선 반도체 구조 혁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최근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알파고`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능화된 수많은 반도체 칩의 거대하고 정교한 네트워크가 그 `지능`을 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C와 스마트폰를 대체할 차기 대형 아이템을 찾기에 모두가 목말라 하는 지금 인간의 뇌와 유사한 기능을 하면서 크기 및 에너지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뉴로모픽 지능형 반도체가 등장한다면 손 안의 AI 시스템 또한 먼 미래의 공상과학소설만은 아닐 것이다.
첨단 기술의 발판이 될 지능형 반도체의 원천 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엄낙웅 ETRI ICT소재부품연구소장 nweum@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