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의 근로자들은 무척 불안할 것이다. 열심히 살았고, 일했고, 가족들을 보살폈는데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떠나라는 소리를 들으면 화도 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안전망이 아직 부실한 현실에서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사회 안정과 국가 발전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안 하면 부실기업의 대규모 적자를 은행, 정부, 국민이 메꿔야 한다. 이제까지 구조조정 때마다 항상 은행이 손실을 떠안아 왔다. 그래서 금융계에서는 은행은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번에는 산은, 수은 같은 국책 은행들이 구조조정의 책임을 떠맡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을 통해서 선택적 양적 완화를 하겠다는 것은 이미 발표됐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후 수단인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구조조정이라고 한다면 시기를 놓치지 말고 정확하고 빠르게 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방향과 속도다. 먼저 방향을 잘 잡고 전광석화같이 추진해야 한다. 지금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기업들도 사실 미래를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지금 대규모 적자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도 관점은 미래를 보고 해야지 현재의 빈약한 실적만을 보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 자칫 일시적 불황을 산업 구조 문제로 잘못 이해해서 구조조정을 해 놓고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구조조정 뒤에 새로운 산업 구조로 전환하겠다고 했는데 새로운 산업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으면 그 또한 황당한 사태가 될 수 있다. 앞으로 5년 뒤나 10년 뒤의 국제 경제, 국가 경제, 산업 구조, 인구 구조, 생활 패턴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기 전에 집중 논의돼야 한다.
다시 강조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 지금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가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왜 나만?“이라고 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해 지면 여기저기 뒤집어 놓고 뒷수습이 안 되는 최악의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 이런 고통은 참아야 한다는 설득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에서 혁신이 용두사미가 되는 이유도 혁신 이후에 대한 확고한 비전은 없고 단지 변해야 한다는 명제만 난무하면 임직원들이 우왕좌왕하다가 곧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혁신이든 구조조정이든 지금 상황이 위중하다고 위협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앞으로 이래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변해야 하고, 그러면 뭐가 좋은지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대한 동의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 해운과 같이 국제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진 분야의 부실 기업들 통폐합을 적극 유도해서 일부라도 살려 보자는 것이다. 경쟁력이 취약한 부분을 도려 내고 난 뒤 바이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신사업을 적극 육성해서 구조조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와 청년실업자들을 흡수하자는 내용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서비스 산업 분야로, 하드웨어(HW)에서 소프트웨어(SW) 분야로, 대기업 집단에서 강소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자는 것이다. 얼핏 방향은 맞아 보인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고 난 뒤의 전체 그림이 안 보인다. 산업의 구조를 흔들겠다고는 하는데 어떤 목표로, 어떤 일정으로, 어떤 산업 체계로 육성하고 발전시키겠다는 마스터플랜이 안 보인다. 구조조정의 비전과 구조조정을 위한 액션플랜(Action Plan), 즉 무엇을 누가 언제까지 하겠다는 세부 일정표가 있어야 한다.
지금 세상을 이끌고 있는 기술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바뀌면서 발전해 가고 있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하찮아 보이는 기업들이 20여년 만에 포천 500대 기업의 시가 총액 상위에 올라가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가 그렇다. 겨우 20년 만에 세계 1위의 기업이 탄생하는 광속의 시대에서 미래를 잘못 예측하거나 변화의 속도가 늦으면 바로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구조조정이 결단력이나 추진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미래를 보는 혜안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구조조정을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뒤에서 조정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이런 속도로 이렇게 진행할 것이다`라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는 이런 사람들이 당분간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그래서 당분간 이렇게 도와 줄 테니 당분간 참고 있어야 한다`라고 설득하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 정통하고 혁신을 직접 주도해 본 사람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