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전략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세계 3대 표준화기구에 신고해 인증 받은 우리나라 `표준필수특허 건수`(누적)가 처음으로 세계 5위에 등극했다. 세계 3대 표준화 기구 이외에도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8829건)와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95건)까지 합산하면 9706건으로, 미국(2만1804건) 다음으로 세계 2위에 꼽힌다. 새삼 지식재산 강국으로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기업과 기관들의 활발한 표준필수특허 인증은 세계적으로 산업계 영향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지식재산에 있어 표준필수특허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기관의 지식재산 전략에 따라서는 표준필수특허만큼 기술 혁신, 소비자 기호 등을 토대로 비표준필수특허를 잘 활용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표준필수특허`란 핵심 특허로 표준화기구에 참여하는 기업이나 기관이 표준화 활동을 하면서 표준과 관련된 특허를 해당 기구에 신고해 인증 받는 것을 말한다. 표준필수특허를 해당 기구에 신고해 인증 받으면 기업 등에서는 기술에 대한 허락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 해당 특허를 침해하지 않고서는 제품의 생산이나 판매가 곤란해진다. 곧 기술에 대한 시장지배력을 보장받게 된다. 한편 `사실상 표준(de facto)`으로 통용되는 비표준특허는 차세대 DVD 버전을 놓고 블루레이와 HD DVD가 경쟁을 벌이다가 블루레이가 사실상 업계 표준이 된 것과 같이 기술 경쟁을 정상으로 거쳐서 표준처럼 쓰이게 된 특허를 의미한다.
이렇듯 지식재산권에서 `표준필수특허`와 `사실상 표준특허`가 다른 기준에서 적용돼야 한다. 그동안 `사실상 표준특허`와 `표준필수특허`는 기술에 대한 시장지배력을 담보로 실시자(Licensee)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 조건으로 실시 허락(license)을 할 것이라는 자발적 확약(FRAND)을 똑같이 적용 받는 등 기업의 특허권 행사가 과도하게 제약받고 있다. 나아가 경쟁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비판론을 인지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난 3월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심사지침`을 개정해 시행하게 됐다고 하니 실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개정된 공정위 지침 내용 가운데 표준필수특허에 관한 주요 개정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표준기술 정의를 표준화기구 등이 선정한 표준으로 한정하고, 표준필수특허 정의 또한 표준기술로 채택되기 위해 특허 보유자에게 자발적 FRAND 확약이 요청되는 특허로 규정했다. 둘째 표준화기구가 채택한 표준필수특허와 자유 경쟁 결과로 해당 업계의 표준이 된 사실상 표준특허는 차별화해 구분을 명확히 했다.
표준필수특허 관련 규제를 합리화한 이번 개정으로 이제 `사실상 표준특허`에 대한 과도한 규제의 완화와 더불어 기업들의 특허권 적극 행사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또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법 집행에서도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개정 공정위의 지침은 대내외로도 단순한 국내 규제 완화를 넘어 표준필수특허 조항과 관련해 기술혁신 지향의 규제 정비에 선도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성장의 길로써 혁신에 목마른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세계적으로도 표준필수특허에 대한 규제 모범 모델의 예로 각광받는 등 단순한 특허 강국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지식재산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차세대 콘텐츠 재산학회장) ghlee@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