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선진국 경제는 서비스업 내지 서비스화 산업이 핵심으로 되고 있다. 21세기 들어와 한국 경제를 떠받쳐 온 제조업의 성장 부진 내지 쇠퇴 영향으로 우리는 서비스 산업이 이를 대신해 미래 일자리와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업을 어떤 것인가. 단순 노무를 제공하는 서비스인가.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서비스 산업처럼 단순한 일거리로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이 낮은 일자리만 많이 만든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미래는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서비스 산업을 만들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오래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소득도 키우고 청년에게도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만들려면 결국은 기업이 전에 보지 못한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이런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관용사회 제도와 문화 인프라 구축이 성공 요건이라고 본다.
서비스 산업은 원래 다양성과 변동성이 크다. 서비스 수요가 생기는 시간도 들쭉날쭉이다. 고객마다 원하는 내용도 다르다. 이에 따라 안정성보다 다이내믹한 유연성이 중요하다. 즉 서비스생산 능력을 시장(고객 요구) 변화에 맞도록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력 구조 조정, 시설 변경, 업종 변환이 빨라야 하고 시장 변화도 빠르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쌓아 온 여러 분야의 데이터베이스(DB)와 IoT 등으로 만들어지는 빅데이터를 분석 활용하는 능력, 고급 소프트웨어(SW) 개발 기술, 우리의 ICT 인프라가 결합·활용되면 훌륭한 대응 방안이 제시될 것이다.
서비스에서 만들어지는 가치는 대체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은 사실상 서비스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것이 된다. 대체로 단순 서비스는 프로세스를 상세하게 분석해 명시화할 수 있다. 실제로 이미 많은 서비스 프로세스가 ICT를 활용해 매뉴얼화, 업무자동화로 서비스 산업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었고 사업의 확장성도 좋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 음식 사업에서 잘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에서도 이런 효율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ICT를 이용한 서비스 효율화는 다른 경쟁 기업도 어떻게 해서든지 배워서 따라 오고, 그런 서비스는 어디나 다 비슷비슷한 수준이 된다. 즉 서비스가 ICT를 통한 효율화로 일용품화돼 치열한 가격경쟁 속에 빠지고 수익성은 저하되고 만다. 이미 많은 제조산업에서의 중국과 베트남 추격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서비스라면 그 프로세스는 명시화하기 어렵고, 암묵적인 때가 많다. 고객도 서비스 컨텍스트 이해도가 높아져야 하고, 서비스 인력에게도 단시간에 쉽게 배울 수 없는 전문 지식·기술·경험이 요구돼 서비스 시스템 구축에 시·공간상의 제약이 생긴다. 즉 사업 확장성에 문제가 많다. 미래 서비스 산업은 과거 폭풍 성장과 규모 확장이 가능하던 제조업이나 전자상거래 서비스에서와 달리 오히려 다소 소규모여서 다양하고 독특한 서비스 비즈니스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의료, 교육, 법률, 금융, 컨설팅 서비스, 문화콘텐츠 교육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는 고객과 기업이 직접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가치를 공동으로 만들어 내는 분야다. 즉 고객마다 요구하는 내용이 특별한 것이어서 전문성을 갖춘 기업이라 하더라도 고객과 함께 차별화한 가치를 공동 창조해야 한다.
나아가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에서 ICT는 고객과 기업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개발, 생산, 유통 과정에서 참여와 협력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지금까지 ICT가 표준화되고 명시화된 서비스 자동화와 효율화에 기여했다고 한다면 미래에 요구되는 ICT는 다양성과 유연성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돼야 한다. 가치 공동창조 ICT 플랫폼 구축에는 생각보다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자본집약형)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고부가가치 공동창조 서비스 산업을 기존의 서비스 기업만이 잘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서비스 비즈니스는 오히려 기존의 사업자가 아닌 스타트업이나 타 분야 기업이 새로 시장에 진입해 성공시킨 사례가 많다. 알리바바는 유통서비스를 해보지 않았고 금융 서비스를 해본 적도 없는 회사다. 페이팔 서비스와 비트코인, 심지어 인터넷 증권 거래도 기존의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아마존 역시 전통의 기존 서점이 아니었다. 대체로 기존 서비스 기업은 이미 정착된 거래 시스템, 관행, 업무처리 프로세스, 고객 대응 방식 등을 혁신해서 바꾸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기득권에 안주할 필요가 없으며, ICT 기반의 혁신만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는 신규 참여 기업의 활동에 대한 규제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원격의료, 핀테크 서비스를 보면 이미 20여년 전부터 그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다. 또 ICT 기반을 다른 나라보다 더 잘 갖추고 있었음에도 이른바 `거래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기존의 사업자 기득권만 연장됐으며, 글로벌 경쟁력 창출은 먼 꿈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서비스 산업은 가능성도 있지만 위험성도 크다. 혹시 있을 수 있는 실패에 대해 기업, 정부, 사회가 사후 책임 추궁과 비난보다는 합리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사전에 정하는 기업문화와 사회제도도 갖춰야 한다.
김우봉 건국대 경영대학 교수 wbkim@konkuk.a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