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가운을 벗고 스타트업 창업 사례가 늘고 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으로 평가되는 의사직을 등지고 스타트업에서 성공신화를 써나갈지 주목된다.
15일 벤처캐피털(VC)업계에 따르면 인터베스트는 3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문여정 산부인과 전문의를 이사로 영입했다. 의사가 VC업계에 영입된 사례는 처음으로, 문 이사는 헬스케어와 바이오 투자를 전담한다.
병원 현장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휴대용 초음파진단기기를 출시한 힐세리온이 그렇다. 류정원 힐세리온 대표는 응급실 의사로 근무한 경험을 제품에 녹였다. 초음파진단기기는 의사 가운 주머니 크기에 맞춰 제작돼 언제든 사용이 가능하다. 디스플레이가 따로 없지만 스마트폰과 연동해 그 자리에서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유럽 의료기기 인증,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도 획득했으며 편의성을 인정받아 서울대학교병원 등 국내 대형병원에 제품을 납품했다. 또 10개 국가와 총판계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 중이다.
의료 전문지식을 활용해 창업한 사례도 있다.
지난달 디캠프 스타트업 데모데이 행사 `디데이`에서 힐링페이퍼가 우승을 차지했다. 힐링페이퍼는 `강남언니`라는 성형 견적 앱을 서비스한다. 이용자가 사진을 올리고 원하는 성형 부위를 등록하면 여러 성형외과 시술법과 견적을 제시한다.
홍승일 힐링페이퍼 대표를 포함해 연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출신 2명이 힐링페이퍼에서 근무한다. 홍 대표는 “성형 부위, 상태에 따라 시술이 달라지는 데 소비자는 어떤 시술이 적합한지 알기가 쉽지 않아 몇몇 병원 말에 의존한다”며 “강남언니로 소비자와 병원 간 정보 비대칭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의사가 아닌 창업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소아 열관리 앱 `열나요`를 운영하는 모바일닥터 신재원 대표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출신이다. 신 대표는 창업에 뛰어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겪었다. 그는 “복강경 영상 재건 소프트웨어 사업, 원격상담 서비스를 내놨다가 실패를 맛봤다”며 “사업을 하면서 특허, 투자 유치 등 공부할 게 너무 많았고 창업 초기 수익은 없는데 개발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큰 부담이었으며 반대 일색인 주변 반응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의사의 스타트업 진출을 두고 김치원 서울와이즈요양병원 원장은 “의사가 다른 업종에 진출하는 일은 예전부터 있었다”며 “이제까지는 컨설팅, 법조계, 제약업이 주요 진출 분야였다면 스타트업은 새로운 진출 통로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소위 `페이닥터` 근무여건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고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기대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임영철 캐피탈원 투자심사역은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이제 초기단계를 지나고 있어 성장성이 높은 분야”라며 “최근 들어 의사 출신 창업가들이 스타트업 시장에 뛰어드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성숙할수록 의사인력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의료인·환자 교육용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제작하는 헬스브리즈 정희두 대표,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도 의사 출신이다.
의료영상 딥러닝 스타트업 루닛의 백승욱 대표는 “의료기기를 개발할 때 이용자 평가를 반영해 제품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역량 강화 차원에서 전문의 영입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류규하 삼성서울병원 연구전략실 교수는 “의사가 창업에 나서 현장에서 필요한 제품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이러한 창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며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제품을 내놓으면 해외시장에 진출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 창업·엽입 스타트업·벤처캐피털 현항 (자료:각사 취합)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