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SK텔레콤에 낯선 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다. 발신지는 이란. 에너지부 소속 공무원이라고 밝힌 남자가 “홈페이지에 올린 기술이 궁금하다”고 했다. 지난 3월 17일 홈페이지에 영문으로 올린 `세계 최초 사물인터넷(IoT) 전국망 구축` 자료를 본 것이다. 국부 원천인 석유와 가스를 원격 검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인터넷을 뒤지다 이 자료를 발견했다고 했다.
영문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리기 이틀 전, 미래창조과학부는 사물인터넷(IoT)용 주파수 출력을 지금보다 20배(10㎽→200㎽)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IoT 산업 육성을 위한 선제적 대응이었다. 전성배 미래부 전파정책국장은 “혼신 문제가 걸렸지만 실험결과 문제가 없다고 나왔다”며 “산업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규제를 푼 것”이라고 말했다. 출력을 높이면 전파 도달거리가 길어진다. 전국망을 구축할 때 기지국 건설비용이 3분의 1로 줄어든다.
하루 뒤, SK텔레콤은 세계 최초 IoT용 전국망을 구축한다고 화답했다. 구축비용 문제로 망설였는데, 정부가 출력을 높여주자 지체 없이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3000억원 들 일을 1000억원에 할 수 있게 됐다. 전국 어디서나 IoT 전용 주파수를 활용해 원격검침 등 신규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권송 IoT솔루션부문장은 “주파수 출력 상향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정부의 선제적 규제개혁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란이 원격검침 방침을 세운 것은 에너지가 국가 기간산업이기도 하지만, 이슬람 관습 영향도 컸다. 여성의 외부활동이 제한돼 검침원이 가정을 방문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IoT 기술을 활용한 원격검침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좋은 해법이었다.
하지만 막상 실무 협상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란 가스공사(NIGC)와 협상을 했지만 서로를 탐색하고 알아가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달 가까이 진척이 없던 협상은 4월 말 급물살을 탔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에너지부와 가스공사가 먼저 양해각서(MOU) 교환을 제안했다.
SK텔레콤은 지난 3일 이란 에너지부, 가스공사와 MOU를 교환하고 테헤란 등 5000가구를 대상으로 스마트 가스검침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현지에 IoT 통신망을 구축하고 5000가구에 스마트 가스 미터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IoT 통신망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력과 상수도 분야에도 스마트 검침 기술을 적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계획이 성사되면 국내 통신기업 해외진출 가운데 최대 성공사례가 될 전망이다.
불과 두 달 사이 벌어진 일이어서 `각본을 짠 거 아니냐`는 말까지 회자된다. 그만큼 우연과 행운이 겹쳤다. 공무원의 작은 규제개혁 하나가 멀리 이란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규제개혁 나비효과`라는 평가도 통신업계에서 나온다. SK텔레콤은 6월 내로 국내 IoT 야외 전국망을 설치하고, 향후 2년 간 실내 전국망도 설치할 계획이다. 이란 IoT 사업이 확대되면 중소기업 동반진출 효과도 기대된다.
권송 부문장은 “이란 가스공사 납품 실적은 이란 IoT시장 진출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이란을 넘어 중동 및 신흥시장으로 성공스토리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