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 <57 >기술력과 원칙으로 승부하는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는 28년 동안 `원자현미경 외길`을 걸어 온 벤처기업인이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교수직도 마다하고 미국 실리콘밸리 셋집 차고에서 원자현미경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잘나가던 회사를 팔고 귀국해서도 KAIST와 포스텍에서 교수직을 제안 받았으나 다시 벤처 사업을 시작했다.

경영관도 남다르다. 과정이 어렵다고 편법을 동원하거나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오직 기술력으로 승부하고, 투명경영을 한다. 이윤보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며, 가치를 우선한다.

박 대표를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로에 위치한 한국나노기술원의 4층 대표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입구 왼쪽에는 사기(社旗)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 철탑산업 훈장증과 함께 각종 감사패, 기념패가 놓였다. 눈에 띄는 게 아버지 조지 H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노교수의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은 누구인가.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 때 지도교수이던 캘빈 퀘이트 교수다. 원자현미경 개발 공로로 미국 국가과학메달을 받고 찍은 사진이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서울대 교수직 제안을 왜 거절했나.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서울대가 공대 교수를 뽑았다. 모교인 데다 스탠퍼드대 동문 교수가 많고 나이가 젊어서 가장 유리했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교수직을 놓고 고민하다가 사업을 택했다. 주위에서 편한 길이 있는데 왜 사업이냐고 말렸다. 교수는 내가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88서울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였다. 한국에서는 올림픽 열기로 가득했을 때 나는 원자현미경을 상용화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엔젤캐피털과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고, 나도 2만달러를 투자했다. 세계 최초로 원자현미경을 상용화했다.

당시 나이 29살. 돈과 미국 내 인맥, 사업 경험도 없었지만 자신감과 열정으로 스탠퍼드대에서 사귄 재미교포 박사 동기와 단 둘이 셋집 차고에서 창업을 했다. 연 매출 1200만달러의 회사를 팔고 10년 만인 1997년에 귀국했다.

-왜 귀국했나.

▲1993년에 회사 부도 위기를 겪고 기사회생했다.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경영 서적을 읽다가 “당신 장례식에 모인 이들이 당신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 생각해 보라”는 글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넓게, 멀리 보며 살자`고 결심했다. 미국은 쾌적하고, 물건 값 싸고, 볼 곳도 많다. 처음에는 `천국 같은 동네가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10년쯤 지나자 허전했다. `나이 마흔 전에 귀국하자. 나이가 더 들면 적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회사를 1700만달러에 매각하고 귀국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도 받고 기업인으로 경영 수업도 쌓았으니 미련이 없었다.

-귀국하자 유명 대학과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는데.

▲KAIST와 포스텍, 대기업에서 나노교수 또는 나노센터장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한국에서 정석(定石)대로 사업해서 한국 벤처창업의 밀알이 되고 싶었다.

박상일 대표는 “벤처기업이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스톡옵션제도”라면서 “정부가 이제는 중소기업 위주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박상일 대표는 “벤처기업이 우수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스톡옵션제도”라면서 “정부가 이제는 중소기업 위주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기술력을 무기로 원리원칙대로 투명경영을 하자고 결심했다. 불의와 타협해 회사 이익을 꾀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단 한 건도 회사 비리가 없다. 처음에는 한국 풍토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흔히 말하는 인사치레를 하지 않아서 이런 저런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지만 투명경영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매출이 중요하지 않나.

▲물론 매출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새로운 가치다. 다수 기업들이 매출이 떨어지면 직원을 몰아붙이는데 그런다고 매출이 크게 늘지 않는다. 사업은 마라톤처럼 장기 게임이다. 경영자가 시시콜콜한 업무까지 관여하면 사람이 크지 못한다. 중요한 일은 대표가 챙기지만 어느 범위까지는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그렇게 1~2년이 지나면 회사 역량이 배가한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소통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윗사람 눈치 보지 말라`고 한다. 미국은 야단은 약하게 치고 칭찬은 크게 하는 사회인데 우리는 칭찬에 인색하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미국과 한국의 벤처 생태계 차이점은.

▲미국은 벤처 생태계를 잘 구축했다. 기술만 있으면 투자와 회사 설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쉽다. 한국은 규제가 많고 행정 절차가 복잡하다. 미국은 기술을 보고 투자한다. 주변에서 창업한다고 하면 박수를 치고 격려해 준다. 한국은 반대다. 부모부터 창업을 말린다.

-왜 그런가.

▲한국은 그동안 압축 성장을 했다. 그 과정에서 경제 구조가 대기업에 편중했다. 자본, 인력, 유통의 모든 분야를 대기업이 독점했다. 자본의 횡포가 생기기 마련이다. 불공정과 기술 가로채기, 인력 빼가기도 많았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고도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제는 정부가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야 한다. 선진국은 대기업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한국의 벤처 생태계는 개선할 점이 많다.

-어떤 점을 고쳐야 하나.

▲벤처기업이 우수한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스톡옵션제도다. 우리 회사도 스톡옵션이 있었기에 우수한 인재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 스톡옵션 제도는 정부가 수차 개선한다고 했지만 알맹이는 그대로다. 이걸 개선하면 우수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몰리게 된다. 실제 2000년 전후로 대기업 인력 유출 사태가 있었다. 회사가 발전하려면 고급 인재가 필수다. 고급 인재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기술을 보고 투자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융자를 받아 사업을 한다. 이걸 투자 받아 사업 자금으로 조달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사업에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다.

-원자현미경 시장 규모는.

▲전자현미경 시장이 3조원 규모인데 원자현미경은 3000억원 정도다. 한국 시장은 80억원 정도로 본다. 원자현미경 시장은 연 10%씩 성장한다.

-원자현미경 분야의 기술 수준은.

▲우리 회사가 단연 세계 최고다. 보유한 특허만 32건이다. 원자현미경을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했고, 지금까지 28년 동안 오직 원자현미경 외길만 걸었다.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모두 은퇴했다.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을 개척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특히 고가장비일수록 작은 회사의 제품은 사후관리(AS) 등을 이유로 구입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최고 기술력으로 남들이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다. 제품을 알리기 위해 각종 전시회에도 나간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 정도다. 1위인 브루커의 시장 점유율이 40~50%를 차지한다. 멀지 않아 점유율을 50%까지 높여 1위를 차지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3개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이르면 7월께 독일에 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앞으로 유럽과 인도, 중국에도 법인을 설립한다.

-제품 가격은.

▲수천만원부터다. 반도체 생산공정용 장비의 경우 20억원이다. 주문 제작된다.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인재들이 몰리는 이유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주위 인맥을 총동원해도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다가 정부에서 병역특례제도를 도입하면서 문제가 풀렸다. 물리학, 전자공학과, 기계학과 수재들이 회사로 몰려 왔다. 병역 특례가 끝난 직원들이 대기업으로 가지 않고 우리 회사에 남겠다고 하자 부모님 반대가 극심했다. 직원들이 부모를 설득하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이들은 우리 회사가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강소기업이어서 미래가 밝다고 확신,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회사 발전에 기여한 직원에게는 스톡옵션을 줬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 핵심 인력 가운데 유영국 박사나 조상준 박사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다. 유 박사는 고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미국 고교를 수석 졸업했고, 시카고대 물리학부에서 `올A`를 기록했다. 박사 학위는 UC버클리대에서 받았다. 서울대와 KAIST, 삼성 등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고 우리 회사로 왔다. 지금 미국 법인에 가 있다. 조 박사는 KAIST 협력교수를 그만두고 우리 회사로 왔다. 이 밖에도 인재가 많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젊은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하나.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 남들이 필요한 일을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역순(逆順)으로 직업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남을 무조건 따라 할 게 아니다.

-기업가 정신이란.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정신, 고생길이지만 도전하는 정신이다. 인생은 짧고, 한 번뿐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 깊이 생각하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어떤 일이건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취미는 다양하다. 어릴 때는 만들기를 좋아했고, 학창 시절에는 클래식 음악에 빠져 지냈다. 미국에서 살 때는 여행과 테니스를 즐겼다. 한국에 와서는 골프를 한다.

박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물리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응용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PSI 대표이사를 거쳐 1997년 귀국, 파크시스템스를 설립했다. 벤처기업가협회 사회적책임위원장과 벤처리더스클럽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기반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준비위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벤처기업대상 철탑산업훈장과 피터드러커 혁신상,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상, 젊은 공학인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저서로 `내가 산다는 것은`이 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