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115>직업과 직장의 종말

[이강태의 IT경영 한수]<115>직업과 직장의 종말

슬프게도 우리는 일을 해야만 먹고 산다. 그래서 대가를 받을 만한 노동의 가치를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대가를 지불하는 대상을 직장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한 가지 기술만 익히면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고 환경이 변하면서 한 가지 기술로 평생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익힌 기술이 앞으로도 기술로서 계속 인정받는다는 것을 확신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지금 직장이 앞으로도 계속 노동의 대가를 준다는 보장이 없다. 이제 직업이든 직장이든 예전의 평생 개념에서 모두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개념이 됐다.

미국에서도 경기가 나빠지면 대기업에서 수천명씩 감원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난 어떤 미국의 비즈니스맨도 정년퇴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장에서 승진을 꿈꾸고 월급이 오르기 바라지만 그렇다고 이 직장에서 오래오래 다니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서 새로 생기는 직장 60%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자기가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그 이면에는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직업의 안정성 측면에서 정규직과 큰 차이가 없다. 어디에서든지 월급 값을 하면 고용이 보장되고, 월급 값을 못하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구조조정 얘기가 나오고 있는 조선, 해운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답답하고 화도 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초과근무를 밥 먹듯이 했고, 주말 근무도 자주 했을 것이다. 이제 40대를 넘어가는 마당에 갑자기 구조조정 1순위가 됐다. 지금 퇴직금 받아 들고 나가면 이제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 것인가. 모든 사회적 경험이 조선, 해운 관련인데 산업 자체가 흔들리고 축소되고 있는 판에 어디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할 것인가. 암담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꼭 조선, 해운 분야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기관, 통신회사, 유통회사 모두 마찬가지다. 오래되고 나이 든 사람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얼마나 쓰이고 있는가. 신입사원 시절에 배우고 익힌 일이 지금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가.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지금 업무를 하는 데 도움이 안 되고, 지금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은 나에게 있지 않다면 이 괴리를 기업은 어떻게 채워 넣으려고 할까. 부가가치 없는 직원을 버리고 필요한 직원을 채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만약 그대가 정보기술(IT)로 밥을 먹고 있다면 지금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빌리티, 인공지능(AI), 웨어러블, 가상현실(VR), 웹 애플리케이션(앱)에 대해 얼마나 정통하게 알고 실질적으로 이러한 기술들은 솔루션으로 만들어서 기업 경영에 기여할 수 있는가. 나는 개념만 알고 결국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야 한다고 하면 이 일을 꼭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나는 모른 척해도 내 윗사람이 그런 의문을 갖고 있지 않을까? 꼭 이 자리에 `나`여야만 되는 확실한 이유가 있나?

지금 각 직장에서 직원들이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매뉴얼을 따라서 일한다. 그러나 자기가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이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뜻은 결국 한 방식으로 오래 일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나빠지면 구조조정 때 오래된 직원들이 1순위가 되는 것이다. 오래된 사람들이 일하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마이너스 부가가치를 내기 때문이다.

실직자들은 자기를 뽑아 주는 기업이 없다고 하고, 실제로 기업에서는 사람이 필요한데 딱 들어맞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일자리에서 공급과 수요의 미스매치가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급 측면에서 공급자들이 오래된 자기 경력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각 분야, 각 직업에서 최고 수준에 오른 경우는 당연히 자기에 대한 수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력서에 어디서 몇 년 근무했다고 적는다면 새로운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어디서 어떤 업적과 실적이 있었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적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공무원, 군인, 교사와 같이 평생직장이 인기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쪽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어떤 경우에도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 없이는 그냥 오래오래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기업이 망하는 것처럼 국가도 부도가 난다. 공무원이 일다운 일을 않고 마냥 오래오래 근무하고 연금 받을 생각만 하면 머지않아 결국 국가도 이들의 고용 보장을 못하게 된다.

이제 직업이든 직장이든 10년 이상 가는 것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5년마다 앞으로 5년 동안에 나 자신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것인지 구체적인 자기계발 계획을 수립하고 착실하게 실행해야 한다. 근로자들이 험한 꼴 당하지 않고 직업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과 가치를 내가 직접 창출할 수 있도록 자기계발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자기 자신의 사회적 생존력을 스스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건 정부에서나 기업에서나 노조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