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태후` 잭팟? 어느 방송 제작자의 호소

[기고]`태후` 잭팟? 어느 방송 제작자의 호소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직간접 경제 효과가 1조원이 넘는다는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분석이 나왔다. 중국에서 다시 불붙은 한류 덕에 여러 장밋빛 전망이 그려지고 있다. 중국 내 인기뿐만이 아니다.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글로벌 최대 TV 콘텐츠 마켓 `MIPTV 2016`에서 `태양의 후예`는 해외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으며 현재 31개국에 수출됐다.

`예능 한류` 바람도 예사롭지 않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포맷은 MIPTV에서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터키에 판매됐다. 그 밖에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도 아시아를 넘어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한류 가능성을 확인했다. MIPTV 현장에서 목격한 한국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일본이나 동유럽 국가 방송 콘텐츠 전시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 사례만으로 국내 제작사가 그릴 수 있는 청사진은 여전히 밝지 않다. 국내 제작사 대부분이 저작권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했음에도 `권리 양도`라는 미명 아래 방송사가 거의 모든 권한을 가져가는 현실이다.

`태양의 후예` 제작사는 저작권을 KBS와 공동 소유, 수익 배분에 성공했다. 영화배급사인 뉴는 제작비 상당 부분을 방송사로부터 지원받는 여느 외주 제작사와 달랐다. 중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아 방송사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끌어낸 것이다.

국내 다수의 외주 제작사에는 꿈같은 일이다.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표준계약서가 있다. 여기에는 프로그램 기여도에 따라 방송사가 제작사의 권리를 인정하고, 수익 배분 역시 합당하게 해 주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제작사 저작권 확보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여겨진다. 강제력 없는 표준 계약서는 `권고`다. 실효성이 없다. 지상파 방송사의 극히 일부 프로그램에만 표준계약서가 적용된다.

외주 제작사는 늘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좋은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들고도 순이익은 터무니없이 적다. 방송사가 제작사의 창의 기획 대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간신히 인건비를 남기는 수준에 그친다. 제작사는 방송사의 용역 회사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외주 제작사의 투자 유치는 하늘의 별따기다. 질적 성장이 있으려면 투자가 이뤄져야 하지만 국내 창업투자사가 제작사와 손을 잡은 경우는 단 한 사례도 없다. 창투사도 제작사가 수익을 올리게 해 줄 권한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 제작 환경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양질의 인력은 드물다. 결국 중국 등 해외 자본에 종속되거나 우수한 인력의 경우 위험한 유혹일지도 모를 `기회의 땅`으로 떠나고 있다.

제작사가 방송사에 진수성찬을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제작사도 최소한의 (정당하게 나눠야 할) 밥 한 그릇은 먹어야 살 수 있다.

방송 콘텐츠가 글로벌 산업화하려면 방송사와 제작사의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방송사 중심으로 철저한 갑을 관계가 형성돼 불공정 거래가 만연해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방송사도 예전과 달리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하다. 우리나라 광고 시장 규모는 여전히 제한돼 있다. 다매체·다채널 시대가 열리면서 경쟁만 치열해진 결과다. 정부 차원의 확실한 개선책 없이는 한국 방송 콘텐츠 산업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세계 최대 방송 시장(40%)인 미국을 보면 프로그램의 저작권·배급권은 당연히 제작사가 갖고 있다. 독립제작 부문의 해외 매출 세계 2위인 영국은 제작사 포맷 소유권과 수입 공유 등 방송사 간 거래 조항을 제정, 실행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방송 생태계를 되돌아보자. 정부가 뒷짐 진 채 말로만 `상생`을 부르짖을 때가 아니다. 한국 방송 콘텐츠 산업을 살리려면 정부(규제기관)의 강력한 장기 차원의 법·제도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방송사별 순수 외주 제작 편성 비율(35%) 내에서라도 제작사의 권한은 마땅히 보호돼야 한다.

안인배 독립제작사협회장 ceo@koenmed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