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장비업계가 합종연횡하며 인수합병(M&A)과 제휴에 나선 것은 유·무선 네트워크 통합 때문이다. 각 업체가 내세웠던 `전문 분야`는 무의미해지고 고객이 원하는 종합 솔루션을 제공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논리다.
하지만 단순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은 아니다. 급성장하며 네트워크 장비시장을 흔들고 있는 신흥강자에 대응하려는 생존법이다. 새로 그려지는 네트워크장비 업계 지도 뒤에는 `화웨이`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각사가 발표한 2015년 회계연도 매출은 시스코 492억달러, 에릭슨 294억달러, 알카텔루슨트 160억달러, 노키아 141억달러다. 유·무선 네트워크 시장이 다르고 회계연도 차이가 있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시스코가 다른 회사보다 우위에 있다.
화웨이가 끼어들면 상황이 바뀐다. 화웨이는 2015년 회계연도 매출이 608억달러라고 밝혔다. 매출 규모로는 화웨이가 가장 많다. 물론 스마트폰 등 다른 네트워크 장비 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컨슈머 사업을 제외(기타 포함)하면 400억달러 수준이다. 시스코에 뒤처지지만 1·2위를 다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화웨이 최대 경쟁력은 유·무선 네트워크 제품 포트폴리오를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스코·알카텔루슨트는 유선, 에릭슨·노키아는 무선 네트워크`라는 공식이 통용됐다. 회사마다 잘하고, 못하는 분야가 나뉜다는 의미다. 하지만 화웨이는 기지국 전송 장비부터 스위치· 라우터까지 모든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시장만 보더라도 화웨이 성장은 괄목상대할만하다. 2000년 초 국내시장에 진출한 한국화웨이는 지금은 통신3사 모두에 장비를 납품할 만큼 시장점유율을 키웠다. 십수명에 불과했던 인력도 200여명 가까이 늘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시장을 급격히 확대한 배경에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시장 진입 초기 경쟁사와 비교해 싼 값으로 제품을 공급하며 고객층을 넓히는 전략이다. 그렇다고 가격경쟁력만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에는 제품 성능이 뒤떨어진다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기술 제휴와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한 결과 기술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며 “시장 수요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화웨이 장비 성능이 좋아졌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네트워크 장비 강자와 비등한 기술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사물인터넷(IoT)과 5세대(5G) 통신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 전까지 네트워크 장비 시장 규모는 한계가 있다. 화웨이가 기존 고객을 뺏으며 시장점유율을 높이면 경쟁사는 매출과 영업이익 등 회사 성장에 발목을 잡힌다. 화웨이와 차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 등 고객이 과거와 달리 `엔드 투 엔드` 인프라 구축을 원한다”며 “네트워크 장비 업체가 화웨이처럼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거나 다른 회사와 협력해 시장을 타개하려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화웨이 2015년 사업부별 매출액 (단위 : 달러 / 자료 : 한국화웨이)>
< M&A·제휴 관련 주요 네트워크 장비 업체 매출 현황 (단위 : 달러 / 자료 : 업계 취합)>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