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재도전 기업인을 위하여`

아버지는 휴일이 따로 없었다. 매일같이 사업장에 나가셨고, 밤늦게 들어오곤 했다. 그러던 사업체가 부도를 맞았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가 집안 곳곳에 나붙었다. 정이 듬뿍 든 아파트도 넘어갔다. 채권자라도 찾아올까 봐 집에 있어도 숨을 죽였다. 누군가가 문이라도 두드리면 가슴부터 철렁했다. 사업 실패의 혹독함을 20대 초반에 깨달았다. 기자가 사업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게 그 즈음이었다.

지난 24일 재도전 기업인을 주제로 한 강연장을 찾았다. 현장에는 재기 기업인 다수가 자리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서러움이 묻어 났다.

“실패했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는다” “재기에 성공해도 신용등급 회복이 더뎌서 운영자금을 은행에서 빌릴 수가 없다” “실업급여처럼 폐업급여를 신설해 창업자를 보호해야 한다.”

정부는 강하게 창업, 재창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원 규모가 커지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재도전 기업인이 실패 트라우마를 극복할 정도로 사회 여건이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차갑다.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재기 기업인 지원에 적극성을 보이지만 한계가 있다. 범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금융위원회가 재기 기업인 신용등급 판정을 더욱 전향된 관점으로 검토해야 한다. 은행이 재기 기업인을 조금 더 배려하면 효과가 커질 것이다.

성장 동력이 둔화되는 시점에서 창업 장려는 바람직하다. 대기업 일자리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청춘에게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면 대기업 중심의 경제 생태계에 다양성이 더해지고, 우리나라 경제 체질도 강해질 것이다.

재도전 기업인을 용인하는 사회 문화 및 제도가 더 갖춰져야 하는 이유다. 창업 실패 확률은 성공 확률보다 훨씬 높다. 창업을 장려할수록 재도전하는 기업인은 더 는다. 이들에 대한 충분한 보호 없이 창업을 장려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실패 후 재도전이 존중받을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길 기대한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