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홈쇼핑 업계가 출범 21년 만에 최대 위기에 빠졌다. 정부가 TV홈쇼핑 재승인 기준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롯데홈쇼핑에 사상 초유의 `특정 시간 블랙아웃(송출중단)`이라는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규제 강화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TV홈쇼핑은 최근 T커머스 등장에 따라 TV플랫폼에서 우위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온라인·모바일 쇼핑은 급속도로 덩치를 키우며 TV홈쇼핑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치솟는 유료방송 송출수수료는 수익 악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재승인 등 규제 강화를 예고하면서 향후 사업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TV홈쇼핑 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TV홈쇼핑 규제 강화 나선 정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4일 TV홈쇼핑사의 불합리한 관행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추진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가운데 `중점관리 과제`로 선정했다. TV홈쇼핑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점검, 재승인 요건을 관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총리실은 미래창조과학부, 공정위와 TV홈쇼핑 재승인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오는 8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상정하는 것이 목표다. 형식에 그친 재승인 절차를 개선해 최고 재승인 불허에 해당하는 강력한 제재 원칙을 담는다. 기존의 재승인 심사 조건에서 형식 조항을 폐기하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신규 조항을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일정 점수를 충족해야 하는 과락 항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TV 재승인 심사는 △방송평가위원회 방송평가 결과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공익성 실현 가능성(과락 적용)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지역적·사회적·문화적 필요성과 타당성 △조직 및 인력운영 등 경영계획의 적정성(과락 적용) △재정 및 기술적 능력 △시청자 권익보호 실적 및 계획 △방송 발전을 위한 지원 계획의 이행 여부 및 향후 계획 △방송법에 따른 시정명령 횟수와 시정명령 불이행 사례 9개 항목으로 진행한다.
TV홈쇼핑이 재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1000점 만점에서 650점 이상을 획득하고, 과락 적용 항목 배점에서 50%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미래부가 이번에 6개월 영업중지 처분을 내린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심사에서 총점 672.12점으로 재승인을 받았다.
정부 관계자는 “현행 제도가 현실적으로 TV홈쇼핑 재승인을 불허할 수 없다는 데 문제 의식을 안고 있다”면서 “전문가 간담회, 부처 협의 등을 거쳐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래부는 앞으로 현행 5000만원 상한으로 규정한 과징금 산정 기준을 현실화할 계획이다. 홈쇼핑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과징금 산정 기준은 매출액에 연동할 수 있도록 방송법 개정을 추진한다. 실제로 부담을 줄 수 있는 과징금을 설정, 불공정거래와 비리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복안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세부 내용을 검토·논의, 과징금 현실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업 불확실성 커진 TV홈쇼핑
미래부는 롯데홈쇼핑에 6개월 동안 하루 6시간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재승인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데 관한 행정 처분이다. 정부가 TV홈쇼핑 사업자에게 방송 중단 처분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래부는 지난해 롯데홈쇼핑에 재승인을 허가하면서 유효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홈쇼핑에 임직원 비리와 불공정 거래 행위에 관한 혐의로 내린 제재 등을 고려한 조치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재승인을 받기 위해 미래부에 최종(2차)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배임수재죄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신헌 전 대표 등 임원 두 명을 누락했다. 감사원은 미래부가 해당 사업계획서를 별다른 수정 요구 조치 없이 심사위원회에 상정하면서 재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래부는 감사원 요구를 수용, 영업정지 처분이라는 사후 징계를 추가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감사원 (조사) 보고서에 따른 조치”라면서 “롯데홈쇼핑이 (비리 임원) 누락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제출했다는 (감사원) 판단에 따라 처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미래부가 당초 재승인 유효기간 2년 단축이라는 불이익에 영업정지까지 더한 것은 이중 처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규제 강화를 예고하면서 TV홈쇼핑 사업의 불확실성은 커졌다. 미래부, 공정위 등 관련 부처가 TV홈쇼핑 사업자에 수시로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롯데홈쇼핑이 6개월 영업정지 중징계를 받으면서 실제 사례도 나타났다.
정부가 규제라는 `칼자루`를 쥐게 되면서 TV홈쇼핑은 앞으로 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영업 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상품 공급 협력사, 제작 인력, 시청자의 대거 이탈이 불가피하다. 매출과 주가가 동시에 하락하면서 수익 구조 불균형이 발생하고, 투자자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TV홈쇼핑 업계는 정부 규제 강화 정책을 민감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정부 재승인 기준 개선 방향에 따라 기존 TV홈쇼핑 사업자의 `재승인 불허`라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된다. 지난해 면세점 심사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가 탈락하면서 불거진 협력사 직원 고용 문제 등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오는 7~9월 미래부, 방송통신위원회, 중소기업청과 TV홈쇼핑 사업자를 대상으로 재승인 조건 이행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다. 이들 부처는 지난해 `홈쇼핑 정상화 추진 정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면 그후 재승인에 반영할 방침이다.
윤희석 유통/프랜차이즈 전문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