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새 학기를 시작한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고등학교에서 유쾌한 소동이 벌어졌다. 수업 도중에 교실 문이 열리더니 호랑이 탈을 쓴 사람이 갑자기 고개를 내밀었다. “까꿍! 얘들아, 내가 누구 게. 이 학교 교장이야. 이름은 방승호야. 앞으로 잘 지내자.” 학생들의 환호가 터졌다. “까악, 대박!” 교장 선생님은 이날 호랑이 탈을 쓴 채로 모든 교실을 다 돌았다. 한 교실에 머문 시간은 10초. 호랑이 탈을 쓴 `별난 교장` 이야기는 곧바로 화제가 됐다.
며칠 뒤 호랑이 탈을 쓴 교장이 다시 각 교실에 등장했다. “얘들아, 이 학교에서 누가 제일 미남인 줄 아니? 바로 교장이야!” 3주 후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교장 명함을 돌렸다. “교장실로 놀러 와. 맛있는 과자도 무제한 리필해 줄게. 카톡이나 이메일도 보내.”
이내 교장실은 학생들이 앞다퉈 찾는 인기 놀이터로 변했다.
방승호 아현산업정보학교장을 5월 26일 오후 4시 교장실에서 만났다. 교장실에 들어서자 방송국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방에 붙인 수백 개의 노란색 포스트잇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노래방 기기, 기타, 호랑이와 늑대 탈, 곰·토끼 인형들이 소파 위에 놓였다.
방 교장이 준 명함을 보니 앞면은 모험상담가이자 교장, 뒷면은 가수 방승호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는 한국1호 모험상담가이자 4집까지 음반을 낸 가수다.
방 교장은 한국 최초로 학교 안에 PC방을 만들었고, 프로팀인 롤(LoL)팀을 창단했다. 롤은 리그오브레전드의 준말이다. 또한 게임에 빠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게임과 상담을 접목한 게임 과몰입 치유와 재능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역시 공립학교 최초다.
-벽에 붙여 놓은 노란색 포스트잇은 뭔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적은 글이다. 다른 쪽은 교사들이 바라는 점을 적은 것이다.
-학생들은 하루에 몇 명이나 오나.
▲50~60명은 온다. 커피와 초코파이, 과자를 무한 제공한다. 커피는 학생들이 만들었다. 학생들과 만나기 위한 `호객행위`다(웃음). 교장실에서 학생들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호랑이 탈을 쓰게 된 이유는.
▲탈 한 개가 1000시간 교육하는 것보다 효과가 있다. 인문계고 교장으로 재직할 때 절도, 흡연, 폭력 같은 일이 학교 안에서 빈발했다.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우면 덤벼들기도 했다. 해결책을 고민하다가 이벤트 회사가 탈을 쓰고 행사하는 걸 보고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처음 탈을 쓸 때는 창피해서 몇 번이고 망설였다. 한번 해보니 괜찮았다. 자는 아이를 호랑이 탈을 쓰고 깨우면 “헉” 하고 놀라지만 무척 좋아했다. 지각하는 학생이 많아서 전철역에 나가 학생들을 기다렸다.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너 왜 늦었느냐”는 말 대신 “밥은 먹었느냐”고 물었다. 나중에는 학생들과 “파이팅” 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6개월 정도 지나자 학교 폭력과 휴대폰 분실 같은 문제가 사라지고 평화가 왔다. 학생들이 차츰 도서실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이 재미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해 폭력예방 우수학교로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금연 송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그런 노력으로 학교 분위기를 확 바꿨지만 학생 흡연은 여전했다. 어느 날 교장실로 2학년 여학생이 와서 담배 냄새가 너무 심해 화장실에 갈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여학생 화장실 앞에서 금연 콘서트를 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60여명의 학생들이 지켜봤다. 그 모습이 동영상과 페이스북을 통해 금세 전교생으로 퍼졌다. 학생들이 금연콘서트 의미를 알면서 흡연 학생이 급격히 줄었다. 이걸 보고 금연 송을 만들기로 했다. 마침 안형민 작곡가와 잘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가사를 만들어 보냈더니 하루 만에 작곡을 끝내고 취입했다.
방 교장이 인터뷰 도중에 “금연 송을 한번 들어 보겠느냐”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타를 들고 왔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기타를 치면서 작사한 금연 송을 목청 높여 불렀다. “통나무 밑에 가면 하얀 담배꽁초/이놈의 자식들 혼을 내야 하지만/막상 보면 천진한 얼굴….”
인터뷰하다가 노래를 들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기타 연주를 하는 방 교장의 손톱이 눈에 확 들어왔다. 빨간색 네일아트를 한 것이다.
-네일아트를 했는가.
▲이건 미용예술과 학생들이 해 준 거다. 보기 좋지 않는가.
-금연 송은 언제 부르나.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벌점 대신 교장과 상담을 한다. 그때 금연 송을 부른다. 학생들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담배를 끊기 시작한다. 이 노래를 금연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 최초로 학교에 PC방을 만든 이유는.
▲게임 과몰입 학생들과 상담하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차라리 학교에 이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자고 판단해 PC방을 설치하고 e스포츠학과를 만들었다. 최신 기기를 구입하고 게임을 복기(復棋)할 수 있도록 대형 모니터를 설치했다. 게임 과몰입 학생 30명을 모아 학교에서 게임을 실컷 하도록 했다. 공교육 범위 안에서 게임을 하니까 학생들도 떳떳하고, 학교도 책임감을 갖고 지도했다. 지금은 게임제작과로 바뀌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고, 피부와 성격도 좋아졌다. 밤새 게임하던 학생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학교로 달려왔다. 마치 천재로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첫 제자 가운데 삼성프로팀에 입단한 프로게임머가 있다. 손석희다. 지금은 학교 안에 고 3년생 6명으로 프로팀 리그오브레전드(LoL)를 창단했다.
-게임 과몰입 치유 프로그램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올해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간씩 9주 동안 진행한다. 1기는 관내 중학생 15명을 선발했다. 1교시는 영어를 배운다. 게임 관련 영어를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2교시는 게임 전문가들이 와서 가르친다. 3교시는 모험놀이를 한다. 끝나기 20분 전에는 소감문을 쓴다.
-이런 과정을 개설한 이유는.
▲골프나 농구, 축구도 하나의 게임이다. 코치도 있다. 그런데 게임은 왜 없나. 프로그램을 준비해 마포구청에 제안했더니 구청장께서 흔쾌히 지원했다. 1년에 세 번 교육할 계획이다. 여름방학에 하는 2기부터는 인원을 25명으로 늘릴 생각이다. 15명은 관내 학생, 나머지는 다른 지역에서 선발할 계획이다. 6개월 안에 게임 송도 낼 생각이다. 게임 과몰입은 중학교 때 바로잡아야 한다.
-상담은 힘들지 않나.
▲아주 재미있다. 상담할 때는 교장이 아니라 ‘상담소장’이다. 상담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학교에서는 걱정만 하지 구체화한 프로그램이 없다. 나는 상담을 재능 기부로 16년 전부터 했다. 토요일마다 전국 아동센터나 공부 기관을 돌며 상담했다. 좋은 커리큘럼을 만들고 센터도 만들어서 연중 교육할 생각이다.
-상담은 어떻게 하는가.
▲기존의 상담 관념을 다 깼다. 심리 교감이 절대 필요하다. 처음에는 팔씨름을 한다. 어리둥절하던 학생이 두 번째 판에는 이기려고 기를 쓴다. 다음에는 발등 밟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과 가로놓인 마음의 벽이 사라진다. 모든 게 재미가 있어야 한다.
방 교장은 학부모 모임에서 학교장 인사도 독특한 방식으로 한다. 선글라스에 기타를 들고 나가 노래 2~3곡을 부른다. 그 후 학부모들이 궁금해 하는 점을 소상히 소개한다. 교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부순 것이다.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게임은 학생들에게 현실 회피 도구다. 부모가 게임 과몰입 아이에게 “너 뭐가 되려고 그래. 당장 안 꺼”식으로 야단치면 안 된다. 언젠가 한 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을 살려 달라”며 찾아왔다. 상담하고 한 달 만에 학생이 변했고,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전국에서 상담 전화를 해 오는 학부모들께 “학생이 스스로 오게 하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이 좋아지면 그렇게 기쁠 수 없다.
-이 학교의 학과는 몇 개인가.
▲게임제작과와 실용음악과를 포함해 14개 과다. 이 가운데 플라워디자인학과는 한국에서 유일하다. 실용음악과 출신의 유명 가수로는 휘성, 박효신, 환희 등이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매년 음반 내기, 책 30권 쓰기, 전교생 상담하기 등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날마다 한 시간 씩 노래연습을 한다. 서울워킹패밀리포럼 2016에 가수로 초청받았다. 노래 두 곡을 불러야 하는데 금연 송이나 ‘동행’ ‘일어나’를 놓고 생각하고 있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선뻥후조치’다. 성경 말씀에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와 같은 의미다. 취미는 자기와 데이트다. 매일 아침 20분 동안 명상을 한다. 틈만 나면 걷는다. 음악회도 가고 영화도 잘 본다.
방 교장은 교직 29년째다. 중학교 교사로 시작해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와 장학관, 교감, 교장을 거쳐 지난해 3월 이 학교에 부임했다. 모험놀이로 한서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모험놀이’를 특허출원했다. 보건복지부 이달의 나눔인 장관상과 2011년 ‘꿈을 가꾸는 사람’으로 선정됐다. ‘다시 시작’ ‘교문에서’ 등 4집까지 앨범을 냈다. 저서로 ‘우리 집 모험놀이’ ‘기적의 모험놀이’ 등이 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면서 왜 다른 학교에서는 이 같은 학생 위주의 창조 교육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공 모델이 있는데 왜 모른 척 하는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