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고준위 방폐물 안전관리, 핵심은 기술

[ET단상]고준위 방폐물 안전관리, 핵심은 기술

지난달 25일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원자력발전을 하면 필연으로 다 쓴 핵연료인 사용후핵연료가 나온다. 열과 방사능이 높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류된다. 지금까지는 각 원전 내 저장시설에 보관되고 있다. 1978년 고리원전 가동 이후 지금까지 쌓인 사용후핵연료가 1만4톤 분량으로 각 원전의 저장시설이 평균 80% 이상 다 차게 됨으로써 3년 뒤 월성원전부터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정부는 관망(wait & see) 정책만을 유지하다가 이번에 미진하지만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관리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내용을 보니 사회단체를 포함한 비원자력계의 참여, 각 부문의 원자력 전문가와 정부 사이에 심도 있는 논의를 지속 진행해 왔음을 알겠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심층 반영하면서도 예상 소요기간과 관련 기술 확보, 부지 선정 방안, 국민의 이해를 확보하는 방안, 유치 지역 인센티브 제공 등 지속 지적돼 온 관련 문제들에 대해 타당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안으로 발전시킨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다행스러움을 표한다.

미래 세대까지 고려해야 할 고준위방폐물 관리의 핵심은 국민 안전이다. 이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 1항이자 정부도 이번 계획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관리정책의 철학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기준이다. 이러한 고준위방폐물 안전관리의 출발은 기술이다. 기본계획 구현을 위해서는 법제화가 선행돼야 하지만 모든 행정 절차의 이면에 준비돼야 할 것이 로드맵 단계별로 필요한 검증된 기술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동안 선진국에서는 고준위방폐물의 장기관리 기술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필자가 지난 5년 동안 근무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도 원자력 선진국들이 참여하는 지하연구시설(URL) 이용 그룹을 운영하며 해당 기술을 공유하는 공동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0여년 동안 해당 전문가들이 이 그룹에 참여하면서 기술 확보에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 고준위방페물 처분〃관리의 장기 안전성을 입증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번 기본계획에도 영구 처분을 위한 핵심 기술 개발, 우리나라 고유의 처분 시스템에 대한 현장 적용성 확인 및 실증 시험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연구는 우리의 처분 부지 환경에서 현장 실증이 돼야만 하는 내용들이다. 고준위폐기물 처분을 선도하는 모든 원자력 선진국들이 자체 지하연구 시설을 건설, 장기간에 걸친 연구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시설을 유치하겠다는 지역 주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래를 담보할 고준위방폐물 관리시설의 안전은 과학 및 기술적 입증 결과에 근거해야 하며, 그 논리를 바탕으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지속된 검증 과정에 있는 기술 사항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주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기술 협력 및 교류가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8일 마침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고준위방폐물 안전관리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린다. 이런 교류를 통해 국민들에게 기술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필수 前 국제원자력기구 방사선·수송·폐기물 안전국장 pshahn33@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