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 기업을 육성해야 하죠?”
여성 기업 업무를 하면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활동 영역도 늘어난 이 시대에 왜 굳이 여성 기업을 따로 육성하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항의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기업 육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함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여성, 남성 가리지 말고 `공정`하게 경쟁시켜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골라 육성해야지 여성이라고 따로 배려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로 보인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종종 많은 차이를 보인다. 차이는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시책에 참여하는 여성 기업 수를 보면 알 수 있다.
국내 여성 사업체 수는 2015년 기준 약 138만개로 전체의 39%가량을 차지한다. 그런데 여성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자금지원제도에 참여하는 여성 기업은 11%대, 수출과 연구개발(R&D)에는 겨우 5%다. 즉 그동안 정부의 기업 육성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는 수혜자의 90%가 남성이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여성은 남성과 같은 출발선상이 아닌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개한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직장 내 여성 차별을 의미하는 `유리 천장`이 가장 심한 나라로 조사됐다. 지난 201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직원 대비 임원 비율을 보면 남성이 2.4%인 데 비해 여성은 0.4%에 그쳤다. 이 같은 여성 임원 비중은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OECD 여성경제활동참가율에서도 한국은 55.6%를 차지하며 평균 62.6%에 못 미치는 등 조사 대상 국가 34개 가운데 30위로 하회했다.
아직도 학연, 혈연, 지연으로 상징되는 인맥이 통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보력과 네트워크에 다소 취약한 여성이 처음부터 남성과 경쟁해서 기업을 키워 나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는 마치 급이 다른 두 선수를 같은 링에서 경쟁시키는 모양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대결이다.
그렇다고 여성 기업은 약자가 아니다. 중소기업청과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실시한 `2015년 여성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 중소제조업 평균부채비율은 158.5%인 데 비해 여성 제조업의 평균부채비율은 120.5%로 38%포인트나 낮다. 매출 대비 순이익률로 수익성을 따져 봤을 때 중소제조업 평균 3.6%에 비해 여성제조업은 5.4%로 수익성이 높은 경영 특성을 보인다. 사회 편견을 걷어 내면 높은 부채비율과 낮은 수익성 등 재무 구조가 취약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건실한 성장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우량 기업의 잠재력은 여성 기업이 갖췄다.
여성을 사회 약자로 대해 지원하는 방안은 지양해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질이 우수한 기업을 선별해 이뤄져야 마땅하다.
불리한 경제 환경에서 출발한 여성 기업을 대상으로 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출 때까지 창업보육(인큐베이팅)을 지원해 주는 것이 유망 여성기업 육성 정책이다. 미국은 여성 기업에 대한 우대 정책을 적극 전개, 출발선의 격차를 줄이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화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를 넘어 당장 내년부터 인구 절벽에 의한 생산성 감소로 인해 잠재성장률 하락이 예견된다. 새로운 성장 동력과 기업 경쟁력이 시급한 가운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여성 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매출이나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낮은 부채율과 높은 수익성으로 안정 경영을 하는 등 위기에 강한 여성 기업이야 말로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신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유숙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이학박사(redrose@wbiz.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