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알파고가 남긴 선물-AI연구소 설립을 기대하면서

[미래포럼]알파고가 남긴 선물-AI연구소 설립을 기대하면서

1998년 7월 7일 이른 아침,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 국민은 박세리 선수가 US오픈에서 맨발로 연못에서 공을 쳐 내며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한국 여자프로골퍼는 세계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했다. 이런 결과가 과연 정부나 체육계의 육성정책만으로 가능했을까. 물론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세리 선수를 통해 많은 꿈나무가 그들의 꿈을 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그동안 우리 경제를 창조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럼에도 국민의 창조경제에 대한 이해와 동참은 미흡한 현실이었다. 이런 와중에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세기의 바둑 대결은 정부의 어떤 정책이나 홍보보다 우리에게 AI의 중요성과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훨씬 실감나게 일깨워 줬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많은 알파고 꿈나무가 그들의 꿈을 키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알파고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10여년 후에 이들이 세계 AI 연구계를 주름잡고 우리사회가 4차 산업혁명을 성공리에 대처해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AI를 전공한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이번 알파고의 우승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AI 기술에 대해서만 열광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큰 흐름이 하드웨어(HW)에서 소프트웨어(SW), 규제와 경쟁에서 개방과 공유, 수직 계층화에서 수평 분권화로 각각 바뀐다는 큰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준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최근 정부는 대통령 주재로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열고 AI 분야에 앞으로 5년 동안 1조원을 투자하는 `지능형 정보산업 발전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의 시발로 7개 민간 기업(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KT, SKT, 네이버, 한화생명)이 공동으로 출자, 글로벌 수준의 AI 연구를 선도하고 우리 산업과 사회에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을 개발해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AI연구소(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정부 주도 방식에서 탈피해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형태로 추진된다는 것이 더욱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AI연구소 설립이 그동안 우리가 해 온 단기 및 모방 수준에서 벗어나 장기 및 근원적 방법으로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기간에 예산을 쏟아 붓고 양 위주의 인력 운용으로 알파고 모방에 불과한 성과를 낼 수는 있겠지만 계속해서 수많은 혁신 기술을 꽃피울 수 있는 연구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겉만 보지 말고 변화 중심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근본 변화를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AI는 개혁된 규제와 개방된 건전한 정보통신 생태계 위에서, SW 산업의 튼튼한 기반을 바탕으로 꽃피는 혁신기술 분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 AI연구소 설립 시 다음 사항을 고려해 AI연구소가 4차 산업혁명의 출발이 되길 희망한다.

첫째 일정 기간에 정부의 지원책 지속이 담보돼야 한다. 둘째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AI 연구인력 집단이 돼야 한다. 셋째 기존의 대학, 국책연구소, 기업을 아우르고 통합할 수 있는 융합·협력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넷째 민간이 주도하고 활용하지만 정부가 강력히 지원하는 새로운 추진 체계가 제도로 정착돼야 한다.

김영환 KAIST 컨버전스 AMP 책임교수 nomad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