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일 미국 대륙 버스킹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온 옥상거지(김정균, 이옥합, 최상언, 김태성)는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바삐 움직이고 있다. 약 한 달 동안 기록한 결과물들을 정리하고,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이다. 크라운드 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들에게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것들을 책, 사진, 영상, 공연 등을 통해 되돌려 줄 예정이다.
결과물을 기다리다 현기증이 날 것 같아 옥상거지를 미리 만나 여행담을 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던 벅찬 순간부터 마지막 종착지인 뉴욕 몬탁에서 느낀 아쉬움까지. 누군가의 여행담을 들으며 이렇게 설렌 적이 또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인터뷰 내내 두근거렸다.
“LA에 도착하고 저는 자꾸 마음이 조급했어요. 23일에 공연이 하나 있어서, 맞춰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이 자꾸 늦어지는 거예요. 필요한 물건들을 사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 시간이 가는 게 답답했어요. 그렇게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는데, 명소 같은 걸 계속 찾아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보고 느끼고 싶었던 것들이 이상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엄청나긴 한데, 마음속에 남는 건 없었어요. 오히려 길을 달리다 우연히 본 호수같이 예상치 못한 것들을 만났을 때 더 기억에 남아요.” (김정균)
“내쉬빌이 음악의 도시인데, 저는 여기서 무조건 버스킹을 해야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멤버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저는 인생 첫 버스킹이었어요. 고집해서 버스킹을 시작했죠. 모두들 쭈뼛쭈뼛하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거지 형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고, 옥합도 버스킹에 빠져들어서 하고 있었어요.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이 성사되고, 생각하지 못한 반응과 만남이 있을 때 즐겁다는 걸 느꼈어요. 2시간 정도 버스킹을 했는데, 그렇게 집중해서 무언가를 한 게 오랜만이었어요.” (최상언)
“제가 버스킹을 하는 캐릭터가 됐는데, 저에게 버스킹은 무대가 주는 압박감도 있고 불편함이 강한 존재예요. 그래서 지난해에는 버스킹을 하다 그만두기도 했어요. 사실 버스킹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멤버들에게는 설레는 일이어서 하게 됐죠. 저는 오히려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노래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와주는 것이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막연하게 두렵게 느꼈던 순간들을 마주하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김정균)
“뉴욕 교회에서 공연을 했는데,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내주셨어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버스킹 영상을 촬영하라고 했는데, 미국인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일어나셔서 춤을 추시기도 했고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공연할 때는 어떤 커플이 와서 왈츠를 추더라고요. 공연을 할 때마다 반응이 모두 달랐어요.. 음악으로 우리가 소통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서른을 넘어 간 미국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도, 상상했던 것만큼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처음엔 놀랍고 신기했던 일이 평범해졌고, 뻔해졌다. 하지만 여행이 익숙해질 무렵, 이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마주했다.
“저는 5년 동안 미국에 살았기 때문에 크게 새롭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차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다가, 스시부페에 간 날이 있었어요. 가격도 안 알려줘서 일단 먹긴 먹었는데 맛있는 밥을 먹고 나면 노숙을 해야 됐거든요. 미묘한 감정상태가 너무 웃겼어요. 비싼 걸 먹고 노숙을 해야 되는 이 상황이. 먹고 행복하지도 않았어요. 멤버들끼리 30불을 내고 불행을 샀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요.“ (이옥합)
“아쉬웠던 건 저희가 다 같이 준비한 노래는 한 곡만 있었어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들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뜻도 모르는 노래를 부를 때도 많았어요. 그런 것들이 나중에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 같았어요. 다른 곡을 쓰고, 준비할 부지런함을 가질만한 그릇이 못 된 거죠.” (김정균)
“얼마 전 외장 하드를 정리하면서, 미국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는데 초반에는 풍경 사진이 대부분이더라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물 위주로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처음에는 눈앞에 펼쳐진 것에 집중했다면, 풍경에 익숙해지면서부터는 사람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김태성)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보름이 지나, 마지막 종착지인 뉴욕에 도착했다. 멤버들은 귀국을 앞두고 각각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찍기 전, 옥상거지가 아닌 개개인이 되어 생각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저는 디자인을 하다 보니, 뉴욕에서 미술관을 많이 다녔고 퀸즈와 브루클린에 머물렀어요. 자유로운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보며 감명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이게 뉴욕이구나. 막연히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 결국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김태성)
“뉴욕에서는 차를 갖고 있으면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도에서 오타와라는 지역을 보고 무작정 갔어요. 물소도 많고, 호수도 있는 곳이었는데, 홀로 이 프로젝트를 정리할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김정균)
“저도 진짜 혼자 있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루만 같이 있고 옥합이 형하고 같이 있었어요. 일정 때문에 먼저 가기로 했는데 비행기 표가 없어서 저희와 같이 돌아가게 됐거든요. 카페 간다고 하면, 같이 가자고 하고 졸졸 따라다니더라고요. (웃음)” (최상언)
귀국을 앞두고 다시 만난 네 멤버는 미국 동쪽 끝에 있는 몬탁에 갔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아슬아슬한 절벽으로 들이치는 파도가 인상적인 명소다.
“돌아오는 날 몬탁에 갔다가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았어요. 뭔가 더 달려야 할 거 같고, 아직 더 봐야 할 것 같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잖아요. 다시 운전해서 서쪽으로 가야 될 것 같이 아쉬웠어요.” (최상언)
“몬탁에서 기념품을 사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여기가 좋다는 걸 느끼고 가자고 조른 적에 없었는데, 몬탁은 꼭 와보고 싶었거든요. 정균 형도 몬탁에는 꼭 다시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모든 게 좋았어요.” (김태성)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바다를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어요. 하염없이 치는 파도, 절벽을 넘어가면 해무가 끼면서 판타지에서 보는 것만큼 엄청난 풍경이 이어졌어요. 미국의 끝에서 만난 바다를 보니, 일정도 끝나가는구나 생각했어요.” (김정균)
“살면서 결여 돼 있던 것들이 많았어요. 핑계를 대며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미국 프로젝트 중 친구와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씻은 듯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관점을 달리하며,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김정균)
“한국과 미국에서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낭만, 열정을 찾으러 가자는 말에 혹해서 갔는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버스킹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재미.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그런 것들을 찾으면 이곳에서도 같은 느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옥합)
“저는 이런 생활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직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어요. 한국에 여행 온 기분으로 살고 있답니다. 그때 기억 때문에 여유로움이나 분위기를 갖고 산다는 느낌이에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고요.” (김태성)
"저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외국에서 일을 오래 하셨는데, 리액션이나 주변 사람에게 던지는 농담이 별나보였거든요. 얼마 전에 아버지와 함께 카페를 갔는데, 음료가 잘못 나왔던 거죠. 종업원이 한 잔 더 가져다 주셨는데 아버지가 “5월에도 산타가 있나”라며 농담하신 거죠. 아버지가 낭만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최상언)
이들의 여행은 끝났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게 도와준 후원자를 위해 리워드를 준비하고 있다. 에세이, 앨범,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미국 대륙 버스킹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내놓을 예정이다.
“약속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앨범 작업도 하고, 촬영했던 영상, 사진들도 보여드려야죠. 책도 써야하고요. 여름이 되면 전국의 해수욕장에서 버스킹도 할 예정이에요. 저희에게 주신만큼 다시 돌려드리고 싶어요.”
윤효진 기자 yunhj@etnews.com /디자인 정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