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독성학 연구협력체계로 안전 대한민국 만들어야

[기고]독성학 연구협력체계로 안전 대한민국 만들어야

지난 세기의 눈부신 의약 산업 발전이 각종 질병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고 인간 복지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명 이기가 유용성을 넘어 사람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가끔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보도되는 약물 부작용의 사례는 심각하면 사람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1953년 독일에서 임신부 입덧방지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당시 동물 실험 결과 부작용이 없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판단,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안전한 `기적의 알약`이라는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 탈리도마이드는 1957~1961년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50여개국에서 사용됐다. 하지만 1956년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가 처음 기형아가 출생했고, 독일에서만 아기 5000명이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판매가 된 50여개 나라에서는 1만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다.

그러나 독일과 달리 미국에서는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 가운데 단 17명만 기형아를 출산했다. 미국에서 피해자가 적은 이유는 1960년 탈리도마이드 허가 신청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할 당시 정부가 동물에게선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제약회사 승인 요청을 여섯 차례나 거절했기 때문이다. 탈리도마이드가 생체 내에서 어떻게 독성을 일으키는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밝혀지게 됐다. 꾸준한 연구 끝에 2006년부터 탈리도마이드는 FDA에서 다발성 골수종 치료 요법으로 승인돼 판매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영·유아의 폐에서 섬유화 증세가 발생, 146명이 사망한 최악의 화학물질 참사가 발생했다. 가습기 살균제에는 살균과 부패방지제 등으로 사용되는 구아니딘 계열의 폴리헥사에틸구아디닌(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이라는 화학물질이 사용됐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람이 경구 섭취할 때에 대한 독성 연구는 이미 이뤄져 있었다. 그러나 살균제가 호흡기를 통해 폐에 유입되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독성 연구는 미처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람이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을 호소, 안전성평가연구소 흡입독성연구센터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평가를 시행하게 됐다.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PHMG나 PGH와 같은 물질은 경구 섭취로는 체내에 흡수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호흡기에서 흡입 과정을 거쳐 체내에 들어오면 폐 안에 쌓이고, 폐 조직 안에서 폐섬유화증 등과 같은 독성을 유발하는 등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안전성평가연구소 흡입독성연구센터에서 세계 최초로 흡입독성평가로 밝힌 것이다. 실험을 통해 특정 물질이 체내에 흡수되는 경로에 따라 독성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일깨워 줬다.

독성학은 다학제 접근법으로 접근해야 하는 종합 학문 분야다. 약물과 화학물질 노출, 독성평가, 기전연구, 역학조사 등의 정보는 필수다. 앞으로 약물과 화학물질에 기인한 재해를 최소화하려면 대학, 연구소, 병원, 제약 및 화학회사 등의 연구자들이 서로 신속히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연구협력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안전`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과학자는 이와 같은 비극을 예방하고 안전한 약물과 화학물질을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위해 약물과 독성학 연구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문구 안전성평가연구소장 mkchung@kitox.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