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회사를 접었습니다. 파산 신청을 하고 나니 남는 게 없네요.”
최근 만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대덕밸리에서 촉망받던 기업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근황을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는 10여년 동안 경영해 온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사업을 접었다. 기대한 중국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경영 상태가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부채 때문에 집도 팔았다. 모두 정리하고 나니 이제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도 할 수 없게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기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주변에 많은 기업인이 어려움을 호소한다. 대덕밸리는 정보기술(IT), 부품 등 산업 특성상 기업간전자상거래(B2B)가 많다. 곳곳에서 기존 거래처와의 관계가 끊겼다며 한숨을 내쉰다. 연간 1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던 C사는 국내 대기업이 일방으로 거래를 중단, 매출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N사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말부터 대기업 물량이 3분의 2나 축소됐다. 대기업이 몸을 사리니 그보다 열악한 벤처기업은 더 죽을 맛이다.
실패 기업인 가운데 재창업에 나섰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숨겨야 하는 CEO를 너무나 많이 봤다. 힘들게 일어섰지만 공식석상에서 본인의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부모나 배우자 등 가족 이름으로 재도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예전보다 재도전, 재창업 환경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실패 벤처기업인에게는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다. 자금 확보가 절실한 이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는 곳은 없다. 은행 등 민간 금융권은 더 심하다.
이달 말부터 재창업자 성실경영평가 규정이 신설된다. 실패 기업인 가운데 부채 규모가 크지 않고 도덕적 해이 등이 없는 성실 실패자를 가려내 정부가 재창업자금 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벤처패자부활전 등 지난날의 정부 정책 프로그램에 비춰볼 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현재로서 가늠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벼랑 끝에 몰린 실패 기업인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될 수 있다.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와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