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윤리경영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윤리 경영에 대해 교육하고, 안 지키면 가차 없이 인사 조치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지금 보면 회사에서 가장 윤리경영을 안 지킨 사람들이 오히려 회장님이거나 경영자들이다. 일반 직원들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면 개인적인 책임을 지면 된다. 하지만 경영자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면 그동안 힘들여 키워 놓은 회사의 브랜드가 무너지고, 조직의 영속성이 깨지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경영자가 저지른 비윤리적인 행위 때문에 많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에도 경영자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경영자들의 비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사회 전체적으로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영자들의 비윤리적 행위들은 분식회계, 편법상속, 세금 탈루, 가정 파탄, 부모나 형제간의 싸움, 뇌물 공여, 부당한 인센티브나 배당 수수, 편견과 오만에 찬 임원 인사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경영자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사회적 윤리 기준과 개인적 도덕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경영자들은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한다. 게다가 이른바 재벌의 가신 그룹들도 회장을 위해서는 법을 어겨서라도 오너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신 그룹이란 오랜 기간 회장의 생각을 실행화하면서 형성됐기 때문에 회장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보다는 맹목적인 충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본래 이사회가 경영자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 도덕적 해이를 찾아내야 하지만 우리나라 이사회는 사실 유명무실하다. 그래서 회장의 도덕적 기준이 잘못되면 그룹 전체의 윤리 기준이 흔들리고, 나아가 그룹의 안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도덕 철학의 기본을 쓴 제임스 레이철스는 도덕의 최소 개념을 “자신의 행위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똑같이 고려하면서 이성에 따라 행동하려는 노력, 즉 그렇게 하는 최상의 이유가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이 아닌 사회 정의에 대해 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경영자들이 이런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흔히들 연말에 불우이웃돕기 성금 내고, 각종 재해 의연금을 내고, 연탄 나르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여 주기식 사회 기여 활동에 앞서 좀 더 근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나 수신제가, 즉 도덕의 중요성에 대해 경영자들이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도덕은 자아의 기준, 윤리는 사회적 기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서 도덕은 양심이 기준이고 윤리는 사회적 규범이나 관습, 넓게는 법이 윤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개인의 도덕적 바탕 위에서 집단의 윤리 경영이 가능하게 된다. 개인들이 양심적이어야 조직이 윤리적이 된다.
회장 개인의 도덕적 근본이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의 윤리 경영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비윤리 경영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경영자들의 도덕 개념이 무너져서 생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 사회적 지탄과 공분을 사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회장 자신과 회장을 보좌하는 가신 그룹은 전관예우 변호사들을 모셔 놓고 연일 대책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은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 대해 반성하고, 그동안의 잘못된 비윤리적·비도덕적 결정에 대해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같은 잘못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도 고치고 자기의 도덕적 기준도 제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회장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가신 그룹이 근본적인 반성이 아닌 일시적인 대책을 수립해 상황을 수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 각 그룹이나 대기업이 각종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조직의 윤리 의식, 더욱더 근본적인 이유는 경영자들의 도덕 개념이 무너져서 생기는 일들이다. 나는 그룹을 위해 열심히 일만 했지 죄 지을 일을 안 했는데 재수 없어서 또는 정치적인 음모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언론을 앞세워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자기 자신의 도덕관념이 그동안 얼마나 무뎌 있었고, 자기 조직의 윤리 의식이 그동안 얼마나 희박해져 있었고, 자기가 하려고 한 일들이 그동안 얼마나 정의로운 일이었는가를 반성해 보면 사태 수습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