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4> 한국기업 최초 반도체 조립 사업 뛰어든 아남

1970년대 초 아남산업 화양동 생산라인
1970년대 초 아남산업 화양동 생산라인

반도체 조립 하청 시대가 막 열리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기업인 몇 명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국가에 보탬이 되는 사업을 좀 해 주시오. 내 입장에선 임진왜란 때 일본에 빼앗긴 도자기와 전자산업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합니다. 듣자 하니 미국에선 반도체라고 하는 `마법의 돌`을 만들어 파는데 앞으로 전자산업은 그 마법의 돌이 좌우할 거라고 합디다.”

자전거 사업으로 회사를 일군 김향수 아남 전 회장은 당시 차기 성장 동력으로 도자기와 반도체를 놓고 고민했다. 그는 우선 도자기 산업을 검토하기 위해 일본의 유명한 도자기 산지인 세토 지방으로 향했다. 이 지방을 둘러본 김 회장은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자기는 흙먼지에 뒤덮인 공해 산업인 데다 장래성도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자기는 잊고 반도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백지 상태였다. 반도체를 잘 아는 사람은 없고, 관련 자료는 전무했다. 그러나 반도체가 부가가치 높은 첨단 지식기술집약 산업이란 건 알았다. 한국은 자원 빈국이지만 반도체의 주 원료인 모래(규소)는 주변에 널렸다고 판단했다.

김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것이란 막연한 생각으로 1967년 4월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만난 지인은 한결같이 김 회장을 말렸다. 당시 박 대통령에게 전자 분야 자문역을 해 주던 김완희 박사는 “반도체 산업은 어렵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두 아들과 큰 사위도 반대했다. 상공부 전자담당관으로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기술 연수를 받고 있던 윤정우씨도 “다른 사업을 모색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김 회장은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기술력만 제대로 확보하면 선진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업을 펼쳐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 회장의 의지를 확인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돕기로 했다. 김완희 박사도 재미 기술자인 김병준씨와 조요한씨를 소개한다. 김 회장은 이들의 조언을 듣고 미국 반도체 공장도 견학했다.

1972년 9월열린 전자전람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에게 김향수 아남산업 회장(오른쪽)이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1972년 9월열린 전자전람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에게 김향수 아남산업 회장(오른쪽)이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1년여 동안 조사를 마치고 귀국한 김 회장은 1968년 아남산업 사업 목적에 전자부품 제조업을 추가했다. 국내 최초로 반도체 조립 사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까스로 자금을 마련한 김 회장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서울 성동구 화양동의 배추밭 옆에 있던 낡은 스웨터 공장을 매입했다.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다이본더, 금속선을 연결하는 와이어본더를 각각 2대와 3대를 도입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남산업에 반도체 조립 하청을 맡길 미국 기업은 없었다. “한국 기업이 반도체를 알긴 아느냐”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김 회장은 큰 아들인 김주진씨(현 앰코테크놀로지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미국 빌라노바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김주진씨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고 미국에서 아남산업 마케팅 영업을 담당하는 앰코일렉트로닉스를 설립했다.

1980년 미국엠코 본사 앞에서 찍은 사진. 왼쪽은 엠코 사장(현 회장)인 장남 김주진씨, 중앙은 김향수 회장, 오른쪽은 앰코 토니 페로타 사장
1980년 미국엠코 본사 앞에서 찍은 사진. 왼쪽은 엠코 사장(현 회장)인 장남 김주진씨, 중앙은 김향수 회장, 오른쪽은 앰코 토니 페로타 사장

마침내 1970년 3월 초에 미국의 작은 회사로부터 500개의 샘플 요청이 들어왔다. 아남산업은 어렵사리 만들어 낸 샘플을 항공편으로 보내고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성공입니다. `엑설런트 합격` 통보가 왔어요. 첫 주문도 들어왔습니다!”

이때 아남산업의 직원은 불과 7명, 수출액은 21만달러에 불과했다. 4년 뒤인 1973년에는 전체 직원은 4300명으로 늘었고, 수출액은 2700%나 확대된 4419만달러를 기록했다. 주위에선 `기적`이 일어났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