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위기 본질은 이른바 `파이프론`으로 요약된다. 가만히 있다가는 물줄기가 흐르는 `관` 역할만 하다 끝난다는 것이다. 통신시장 성장기에는 이 역할만으로 충분했다. 정체기에 들어선 지금은 다른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지나다니는 `통로만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통신사업자가 신성장 동력이나 융합을 외치는 근본 이유다. ICT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과감하게 푸는 등 규제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은 ICT생태계 꽃피울 토양
네트워크는 ICT 산업 원동력이다. 망 없이는 ICT산업도 성장하기 어렵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해 5월 선정한 K-ICT 10대 산업(5G·UHD·디지털콘텐츠·스마트디바이스·IoT·지능정보·클라우드·빅데이터·SW·정보보안) 가운데 통신과 무관한 산업은 하나도 없다. ICT 생태계를 구성하는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단말(D) 가운데 기본 토대는 단연 네트워크다. 손정의가 애플 아이폰 출시 첩보를 입수하고 보다폰 일본법인(현 소프트뱅크)을 인수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통신 네트워크야 말로 ICT 생태계가 무성하게 꽃 피울 기름진 토양 그 자체인 것이다.
통신사업은 위기에 직면했다. 네트워크 투자 여력이 줄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가입자와 롱텀 에벌루션(LTE) 가입자 증가폭은 둔화된 반면 데이터 트래픽은 급증한다. 지난해 데이터중심요금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실제 데이터 사용 증가가 1인당평균매출(ARPU) 증가로 이어지는지는 의심스럽다.
2분기에도 통신사 ARPU는 하락하거나 제자리걸음할 것으로 점쳐진다. 통신사들은 오히려 정치권·시민단체의 요금인하 압력을 받고 있다. 마케팅 투자나 기술 투자를 하지 않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네트워크를 직·간접 이용하는 ICT 생태계 구성원의 `무임승차` 논란도 인다. CPND 사업자들이 망중립성 원칙을 이용해 크게 성장하면서도 정작 인프라 구축에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CPND 사업자 서비스는 통신사 서비스를 잠식하기까지 한다. 문자가 SNS로 대체되는 게 대표 사례다. 쉽게 말해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업체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같은 통신사업자가 깔아놓은 유·무선 네트워크를 활용해 ICT 생태계를 꽃피우지만 네트워크 고도화 책임은 통신사만 짊어져야 한다.
◇“규제 풀고 융합 활성화해야”
지난달 말 SK텔레콤은 사물인터넷 전국망 구축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 도전이다. 국토 크기를 떠나 전국에 IoT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동안 시도되지 못한 창의적 서비스가 나올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도전은 미래부의 규제 완화가 있어 가능했다. IoT용 전파 출력을 20배나 높여 준 것이다. 덕분에 기지국 건설 비용이 60%나 줄었다.
새로운 ICT 생태계 창조를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선행돼야 한다. 망을 기반으로 ICT 신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규제들이 융합을 가로막는다. 사전·직접 규제를 사후·간접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SK텔레콤은 생활 가치·통합미디어·IoT 3대 차세대 플랫폼을 육성한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인수합병이 가로막히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해야 했다.
국회 전문성 제고와 선제적 대응 요청은 필연이다. 700㎒ 주파수 분배과정에서 보듯 국회의 잘못된 개입은 ICT 생태계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온다. 19대 국회는 통합방송법이나 요금인가제 폐지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통신산업 규제 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간통신사업자 중심으로 짜인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으로는 칸막이를 넘나드는 ICT 융합 생태계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통신사업자만이 아닌 CPND 전체로 통신 정책 범위를 넓혀야 한다. ICT 생태계 전체를 조망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었다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심사 결과가 사뭇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다.
망 이용 비용을 합리적으로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조심스럽다. 자칫 `인터넷 종량제`와 같은 불필요한 논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